물기 어린 눈
김한빈
우산 없이 비를 맞아 본 사람은 알지
눈이 먼저 빗물에 젖는 걸
슬픔이 눈으로 솟아오르는 걸.
무릎을 꿇은 권투 선수는 알지
다리가 풀리기 전에 눈이 앞을 볼 수 없는 걸
아픔이 눈으로 솟아오르는 걸.
피아노 건반을 밟듯이
층계를 한 음 한 음 내려가 본 사람은 알지
낙타의 커다란 눈이 사막이 숨긴 슬픔이란 걸.
눈부터 나이를 먹고
마음보다 눈이 먼저 늙는다.
비를 맞아 본 적도
무릎을 꿇어 본 적도
층계를 내려가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래도 물기 어린 아침 해처럼 싱싱한 눈을 떠 볼까요?
<오륙도문학> 2020년 12월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