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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스타버스
Jul 17. 2022
1화 - 운명이 등 떠미는 느낌
여정의 시작
< 운명이 등 떠미는 느낌 >
운명이 등 떠미는 느낌을 아는가.
얼마 전 나는 아주 이상한 느낌을 경험했다.
아이들 저녁 식사 뒷정리를 하며 분주한 시간에 걸려 온 이상한 전화 한 통.
' 이 시간에 웬 모르는 번호지 ? '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듯 똑같이 흘러가는 잔잔한 나의 바다에 작은 돌멩이가 던져졌다.
다소 긴장되는 마음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고
" 늦은 시간에 미안해요~ 혹시 일자리 구했나요? "
몇 달 전 디자인 관련 업무로 면접 봤던 곳의 대표님이었다.
" 디자인 관련 업무인가요? " 여쭤봤는데
" 아니.. 그게.. 그건 아니고.. " 최대한 좋게 에둘러서 설명하시느라 힘드신 것 같았다.
" 뭐... 전화 영업이라는 거잖아요? "
" 그렇죠... "별로 내키지 않았다.
' 디자인으로 면접 봤었는데 왜 예전 이력을 가지고 마음대로 일자리 제안을 하고 그러는 거야 정말 '
" 전화 받고부터 계속 짜증이 나는 거 보니까 정말 하면 안 되겠어 " 신랑에게 말했다.
" 그래, 내일 전화해서 안 간다고 해 " 듣고 싶던 말을 신랑이 대신 해주었고 그제야 홀가분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면접 약속된 시간은 11시였다.
오전에 아이들 등원시키고 청소하고 집안일 하느라 어제의 돌멩이를 잊고 있었다.
이제 막 한숨 돌리며 커피 한 잔 내려서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막상 할 게 없었다.
문득 시계를 보니 10시 10분이었다.
' 아참! 면접 ! ' 얼른 전화 걸어서 일자리 제안을 거절해야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한 오지랖이 발동되는 것이 아닌가.
' 그래도 생각해서 전화주셨는데 전화나 문자로 띡! 안 하겠습니다 하기 좀 그렇지 않나? '
' 지금 빨리 준비하고 가면 얼추 시간 맞을 것 같은데 가서 안 한다고 얘기하고 올까?'
평소 같았으면 그냥 잠수 탔을수도 있고 ' 으악 ! 몰라몰라' 하며 문자 전송 버튼을 눌렀을 수도 있는데 그날따라 할 게 없었다.
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자 정말 할 게 없었다. 면접에 다녀오는 것 외에는.
' 할 것도 없는데 얼른 다녀오자 '
가서 거절 하기로 결정하고 집을 나서면서도 이상했다.
나는 가기 싫은데 다리는 걷고 있고 아 정말 가기 싫은데 운전을 하고 있었다.
' 아... 진짜 이상해 '
지금 생각해보니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등이 떠밀리듯 간 것 같다.
그날따라 누군가가 내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들은 다 치워줬고 나무늘보 같던 오전 10시의 두 다리를 활력이
넘치게 해줬으며 가끔가다 나오는 나의 오지랖을 발동하게 해줬는데, 정말 절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 내가 또 이 짓을 하고 있다니
컴퓨터 앞에 앉아서 실시간으로 업로드되는 상담 문의 전화번호들을 업무 파일로 옮기면서 한숨이 나왔다.
나는 분명 거절하려 했는데 운명이 이리도 집요하게 작정한 것을 내가 어찌 피할 수 있을까 싶었다.
너무 절묘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게 된 후 월 60만 원씩 지출액이 늘었고 그전에도 휘청거리던 우리 가정 경제가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려는 상황이었으니까.
이제 더 이상 입맛에 맞는 일자리 찾느라 여유 부릴 수 없었고 나의 오로지 단 하나의 조건인 <10시부터 4시까지, 유치원 쉬는 날은 무조건 휴무>를
맞출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때 고맙게도 운명이 등 떠밀어줬고 근무 시간에 관대한 직장에 데려다 놓았다.
' 그래.. 참 고맙네 고마워 ' 빈정거릴 수밖에 없는 게 벗어나고 싶었던 업무였다.
가끔 헤드셋을 끼고 고객과 통화하고 있는 꿈을 꾸기도 했는데 잠에서 깨면 '다행이다 꿈이었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일을 왜 그렇게 싫어하냐고? 묻는다면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최근에 영업 관련 전화를 받았던 기억을 말이다.
휴대폰 화면에 누가 봐도 광고 전화인 것 같은 번호가 뜨면 제일 먼저 무슨 생각이 드는가?
모든 생각에는 에너지가 있어서 느껴진다.
말하지 않아도, 내 전화가 싫다는 것이.
내가 싫은 게 아니고 이 전화가 싫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하루에 수십 명의 사람에게 거절당하다 보면 전화와 내가 한 몸이 된다.
나를 거절했고 내가 싫은 거고 나는 그만큼 쓸모없는 사람이야.
울음이 나올 것 같은 목소리를 꾹 숨겨놓고 애써 밝은 척 다시 또 전화를 건다.
그게 싫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자존감의 차이는 있었다.
처음 등 떠밀려 면접 보러 갔을 때와 마찬가지인 마음으로 일주일을 출근했다.
' 아... 가기 싫다... 하... 콜하기 싫다...'
그러다 문득 한발짝 뒤로 물러나서 생각해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운명이 나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가 뭘까? 여기서 내가 느껴야 하는 것은 뭘까? 내가 운명을 기획했다면 여기서 뭘 하라는 걸까? '하고 말이다.
혹시 예전에 콜센터에서 근무할 때 꽁꽁 눌러놨던 감정들을 다시 느끼고 해소하라는 걸까 ?
그냥 너는 팔자려니 하고 전화 영업 업무나 하라는 걸까?
'퐁당'
그때였다.
불현듯 머릿속에서 반짝이는 생각.
' 아참! 돌멩이가 하나 더 있었어 !!! '먼저 던져진 돌멩이 때문에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작은 돌멩이가 하나 더 있었다!
내 삶의 너무 큰 변화를 가져온 돌멩이 때문에 뒤이어 던져진 돌멩이를 ' 어 그래... 나 바쁘니까 너는 일단 거기 있어봐 ' 했는데,
'맙소사! 내가 이걸 놓치고 있었다니.'
운명의 기획 의도를 따지려면 이 돌멩이가 먼저였는데 말이다.
운명의 두 번째 돌멩이는 조금 돌고 돌아서 내게 던져진 아이다.
나에게 오기까지를 말하려면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사회에 막 나간 햇병아리 시절. 한창 콜센터에서 근무할 때였다.
눈뜨면 회사, 눈 감으면 집을 반복하던 어느 순간인가부터 자꾸 마음속에 욱신거리며 올라오는 생각이 있었다.
' 아...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싶다. '
어떤 계기가 트리거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시작되고 나자 불쑥불쑥 나타나서 나를 다그쳤다.
' 어서 때려쳐! 이런 재미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파묻히지 말고 나를 좀 보란 말이야 ! '
그때 내가 운명이 쫑알거리는 것을 저항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놔뒀다면 나는 조금 더 빠르게 작가가 되었을까?
나는 쫑알거리는 운명 대신 엄마를 믿었고 비가 세차게 내리는 어느 날.
엄마에게 그동안 숨겨놨던 고민을 이야기했다.
" 엄마. 나 자꾸만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너무 하고 싶어..."
한창 자동차 보험회사 전화 영업 일을 하며 그 옛날에 3~400만 원씩 벌던 시절이었다.
" 하... 너는 왜 또 그러니...? 한군데 오랫동안 진득히 다닐 수는 없는 거야? 정신 차려 제발! 글 쓰고 그림 그린다고 밥이 나와 뭐가 나와!! "
다행이었다. 빗소리 덕분에 내 울음소리가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었다. 세찬 비와 함께 시끄럽게 쫑알거리던 욕망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
그 뒤로 아주 입도 뻥끗 못 하게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싶다는 나의 욕망을 상자 속에 잔뜩 구겨 넣어 튼튼한 테이프로 칭칭 감아 지하 깊은 곳으로 던져버렸다. 다시는 올라오지 못하게 말이다.
까맣게 잊고 있던 박스가 심연 위로 떠오르게 된 건, 그 뒤로 아주 오랜 시간이 더 흐른 뒤 엄마가 되었을 때였다.
세월이 지나 엄마가 된 나는, 세상과 단절되어 육아하게 되었고 심신이 많이 지쳐갔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명상을 시작하고 나의 과거 감정들을 돌아보다가 문득 잊고 있던 나의 박스가 생각이 났다. 떨리는 마음으로 테이프를 떼자 숨이 꼴까닥 넘어가기 직전인 나의 꿈이 말을 했다.
" 어서 와... 나는 늘...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
" 아... 맞아 !! 네가 있었지... 미안해... 내가 미안해... "세찬 비와 함께 떠나보냈다고 생각했지만 내 꿈은 늘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구겨져 있던 나의 꿈을 펴면서 비장하게 다짐했다.
다시는 너를 외면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이날 이후로 마음 한구석에서 저릿저릿하던 억눌림이 신기하게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이 꿈을 인정하기 전까지 늘 마음 한구석이 저릿했었다.
말로 표현하기 굉장히 힘든 느낌인데 마음 한구석이 꿍하고 저릿하면서 억눌린 듯한 느낌.
지금은 예전 그 느낌을 생생하게 기억해 내려고 해도 잘 기억이 안 날 만큼 씼은 듯이 없어졌다. 처음부터 그런 느낌 몰랐던 것처럼.
이제는 비 오던 그날의 나처럼 다른 사람에게 답을 구하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되든 안 되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기로 했고, 그렇게 느리지만 한발 한발 운명이 이끄는 대로 갔더니 이곳에 글 쓰고 있는 내가 되어 있었다.
오래전 그렇게도 쫑알거리던 녀석이 듣고 싶어 했을 '작가'라는 소리를 들으며 말이다.
두 번째로 던져진 돌멩이가 바로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 겪는 워킹맘의 폭풍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느라 미쳐 잊고 있었다.
두 번째 돌멩이의 존재감을...
멈춰있던 나의 바다에 두 개의 돌멩이가 참 절묘하게 던져졌고 나는 왠지 운명의 의도를 알 것만 같다.
나한테 뭘 시키려는지 말이다.
앞으로 나는 이 두 개의 돌멩이가 만들어내는 파동이 어떤 물결이 되어 돌아오는지 관찰하려고 한다.
그토록 싫었던 헤드셋을 다시 끼면서 그렇게나 바라던 펜을 들게 되었다.
나는 이번에 알게 되었다. 쫑알거리는 무의식의 소리는 마음대로 끌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어떤 일렁임도 허용하지 않으려 잔뜩 가림막을 쳐놨던 나의 바다에 있던 그것들을 모두 치워버렸다.
가림막을 치우며 크고 작은 파도에 올라타겠다고 다짐했고 지금 나는 이 작은 돌멩이 두 개의 파동이 가져올 파도를 기다리고 있다.
파도가 오면 즐거운 마음으로 올라탈 준비를
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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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인생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관찰하고 그 기록을 브런치에 남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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