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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좋은 ㅎㅏ루 Aug 24. 2021

맥주의 왕 감브리누스




체코 필스너인 감브리누스 한 잔을 마시면서 맥주의 왕이라 불렸던 감브리누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감브리누스(Gambrinus)는 유럽 문화권에서 '맥주의 왕'이라고 불리는 맥주 문화의 수호성인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 말하는 공식적인 성인은 아닙니다. 전설에 따르면, 감브리누스는 이집트 여신 이시스에게서 양조 기술과 홉 이용법을 배워와 유럽에 전파하였고 맥주의 힘을 빌어 여러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유럽의 그림이나 동상에서 감브리누스는 발 밑에 맥주통을, 한 손에는 맥주잔을 들고 있는 당당한 모습입니다. 

유럽의 감브리누스 동상 (사진출처 : wikimedia)
유럽의 감브리누스 명화 (사진출처 : wikimedia)


감브리누스의 실존 인물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주로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기 때문에 그 지방의 왕이나 백작일 거라는 추측이 많습니다. 여러 설이 있으나 그 중 한 명이 부르고뉴의 공작 장 1세입니다.


부르고뉴라고 하면, 와인 애호가에겐 당연히 부르고뉴산 와인이 떠오를 것이고, 맥주팬이라면 아마도 플랜더스 레드 에일로 유명한 '두체스 드 부르고뉴'가 떠오를 것입니다. 두체스 드 부르고뉴는 말 그대로 부르고뉴의 여공작이라는 뜻으로 부르고뉴를 통치했던 마지막 공작이었습니다.


부르고뉴는 원래 프랑스의 국왕 장 2세(부르고뉴 공작 장 1세가 아님 주의)의 직속령이었습니다. 때는 영국과의 백년전쟁이 한창일 때였는데, 그 중 치열하기로 손꼽히는 푸아티에 전투 중에 프랑스 국왕은 아들 필리프와 함께 영국의 포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엄청난 배상금을 주고 풀려나긴 했는데, 이 때 자기의 곁을 지켜준 아들 필리프가 기특했던 나머지 부르고뉴의 땅을 떼어 왕자령으로 상속합니다. 필리프가 넷째라서 왕위를 줄 수는 없었으니까요.


부르고뉴는 프랑스의 신하인 공작령이었지만, 한 때는 그 세가 커져 프랑스를 위협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대로 살아남았다면 아마 지금의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나라 하나가 더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부르고뉴는 5대에 거쳐 약 100년을 이어갔지만 아이러니하게 훗날 프랑스가 아닌 신성로마제국에 흡수되었습니다. 맥주 '두체스 드 부르고뉴'의 주인공 여공작 마리가 장차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는 막시밀리안 1세와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감브리누스의 실존 인물로 추정되는 부르고뉴의 장은 앞서 국왕을 지킨 필리프의 아들로 부르고뉴의 2대 공작입니다. 그의 별명은 용담공 혹은 용맹공, 무겁공이라고도 하고, 영어로는 'John the Fearless'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겁없는 공작이라는 칭호입니다.


당시 프랑스 국왕이었던 샤를 6세는 반쯤 미쳤기때문에 프랑스의 통치권을 놓고 두 가문이 대립합니다. 하나는 국왕의 동생 오를레앙 가문이고 하나는 국왕의 삼촌인 바로 부르고뉴의 장이었죠. 장은 겁도 없이 백주대낮에 오를레앙의 루이를 암살했는데, 그 보복으로 본인도 몽트로 다리 위에서 암살당하는 최후를 맞습니다.


암튼 이런 장이 맥주 씬에서도 큰 업적을 남깁니다. 당시 플랑드르 지방은 서서히 홉이 그루트를 대체하고 있는 시기였습니다. 장이 나서지 않아도 언제가는 홉 맥주가 그루트 맥주를 완전히 대체했을 것이지만, 장은 홉을 이용한 맥주를 장려했고 이를 일종의 헌장으로 공표하여 홉 맥주의 시기를 앞당겼습니다. 게다가 장은 캄브레이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이 도시가 맥주로 아주 유명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감브리누스의 어원을 캄브레이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는군요. 이런 이유로 장을 감브리누스의 실존 인물로 본다는 여러 가지 설 중의 하나입니다.


여담입니다만, 두체스 드 부르고뉴의 주인공 여공작 마리의 손자가 신성로마제국에서 가장 큰 영토를 지배했던 카를 5세입니다. 이 카를 5세를 기념해서 만든 맥주가 벨기에 헤트 앙커 양조장의 '굴덴 카롤루스'입니다. '두체스 드 부르고뉴'와 '굴덴 카롤루스'는 저의 이전 글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감브리누스 - (증손자) - 두체스 드 부르고뉴 - (손자) - 굴덴 카롤루스로 이어지는 맥주의 가계도가 재미있네요. 



감브리누스 맥주는 필스너 우르켈과 비슷한 체코 필스너입니다. 그라시(grassy)하고 허벌(herbal)한 풀의 향이, 이 맥주를 마시면 생잔디를 깍은 후에 맥주를 들이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필스너 우르켈에 비해 쓴맛은 적습니다. 감브리누스는 필스너 우르켈을 만드는 같은 양조장에서 만듭니다. 체코어로는 플젠스키 프라즈드로이(Plzeňský Prazdroj)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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