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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준 Jun 20. 2022

9.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자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 환자는 어떻게 생활해야할까? 건강할 때에는 생각도 안 해보았지만, 병원생활을 하며 기본적인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2인실에서 항암제를 맞으며 점점 병원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자 6인실에 자리가 비어 병실을 옮겼다. 조용한 2인실과 달리 6인실은 확실히 시끌벅적했다. 가끔은 정신없기도 했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6인실 병동의 복도 게시판에 어떤 환자가 붙여놨는지 삐뚤삐뚤한 글씨로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자라는 문장이 써져 있었다. 어떻게 보면 우습기도 하고 별거 아닌 당연한 문장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환자에게 제일 중요한 진리가 담겨있었다. 

* * *

 환자는 우선 잘 먹어야 한다.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음식 냄새를 맡기만 해도 역하고 가끔 배고파서 먹으면 구토를 했다. 무슨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나에게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무엇보다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큰 문제가 된다. 체력이 받쳐주어야 항암제도 맞고 회복도 빨리 하는데, 음식을 먹지 못하니 몸이 힘없이 축 쳐진다. 그래서 환자는 무조건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긴 병원생활을 하며 먹는 것에 대한 노하우를 가지게 되었는데, 입맛이 없어질 때에는 자극적이거나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나는 피자를 좋아해서 근처 피자집에 자주 주문해서 먹었다. 피자와 콜라가 건강 식단은 아니지만 환자로서 든든하게 먹고 체력을 보충하는 것이 일단 중요했다. 컵라면도 정말 맛있는 별미였다. 항암제를 맞고 입맛이 뚝 떨어졌다가 슬슬 올라오는 때가 있다. 그럴때면 간편하게 컵라면을 끓여서 먹었다. 안 먹어본 컵라면도 어떤 맛일지 궁금해하며 먹었는데, 그것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입맛을 돋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컵라면의 장점은 먹고 싶을 때 바로 먹을 수 있다는 것과, 혹시라도 먹는 도중에 구토가 올라온다면 쉽게 포기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비싼 음식을 주문했는데 먹지 못한다면 정말 억울한 일일 것이다. 물론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면 회처럼 익지 않은 음식은 먹으면 위험하다. 병원에서 먹지 말라고 한 음식을 제외하고, 환자의 체력과 먹는 즐거움을 위해 본인이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을 먹어보자. 우울한 생활이 좀 더 활기차게 변할 것이다. 

* * *

 잘 자는 것 또한 중요했다. 밤에 수면을 취하는 것은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데 도움을 주고, 불면은 우리 몸에 각종 질환과 정신적인 부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환자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규칙적인 수면 패턴은 굉장히 중요한데, 나 또한 완치된 이후 현재에도 규칙적으로 자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환자는 외부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취침 패턴이 꼬일 때가 있다. 식사를 하고 병실 침대에 잠깐 누우면 어느새 긴 낮잠이 되어 밤에 잠이 안 오기 십상이다. 항암제를 맞으면 너무 몸이 힘들어서 한낮에 잠이 드는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나도 병원에서 그럴 때가 있었다. 낮에 잠을 많이 자서 밤에 잠이 안 오는 것이다. 옆 간이 베드에서 아버지는 코를 드르렁 고셨고, 병실 안 환자들은 모두 잠이 들었는지 고요했다. 그럴 때면 온갖 약봉지가 주렁주렁 달린 이동형 링겔대를 끌고 복도로 나가서 슬슬 걸었다. 복도에는 따뜻한 조명이 잔잔하게 켜져 있었고, 스테이션에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조용한 목소리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병실 복도를 따라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걸으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졌다. 걸을 때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고 가벼운 운동도 되어서 참 좋았다. 환자에게 제일 좋은 운동을 하나 꼽으라면 걷기(야외에서는 산책)가 아닐까. 체력적으로 부담이 적고 간단하기 때문이다. 어떤 신부님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고 말씀하셨다. 뉴스에서 격한 스포츠를 하다 죽은 사람은 봤어도, 걷다가 죽은 사람은 못 본 것 같다. 그리고 걷기는 모든 운동의 기본이다. 걸어야 뛸 수 있고, 뛰어야 다른 어려운 운동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불면을 쫓아내기 위해 병실 복도를 많이도 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추억이다. 

* * *

 마지막으로 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잘 싸는 것, 즉 배변이다. 환자들은 변비에 잘 걸린다. 우선 항암제의 부작용 중 하나가 변비이다(쓰고 보니 항암제의 부작용이 정말 많다). 변비는 약물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메스꺼움 때문에 식사량도 줄고 병원 침대에 많이 누워있는 어쩔 수 없는 병원 생활 때문일 수도 있다. 백혈구 수치가 떨어졌을 때 변비에 걸리면 항문에 출혈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배변은 정말 중요하다. 

 나는 원래 장이 민감한 편이라 변비는 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항암제를 맞고 잘 먹지도 못하고 누워있으니 변비에 걸렸다. 병원 환자가 보통 3일 정도 배변을 못하면 변비라고 했는데, 의료진에 말했더니 젊은 의사가 병실로 찾아왔다. 그 의사는 항문의 대변이 굳었는지 확인해야 한다면서 위생장갑을 끼고 내 항문에 손가락을 넣었다. 진짜 하늘에 별이 보일 정도로 너무 아팠다. 다행히 관장을 할 수준은 아니었고, 의사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병실을 나갔다. 이후로 나는 그 고통이 너무 싫어서 변비를 피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했다. 우선 먹는 게 중요했다. 영양제를 링거로 맞을 때보다 여러 음식물(특히 채소)을 골고루 섭취하고 물을 많이 마시는 게 중요했다. 특히 백혈병 환자들은 몸이 건조하기 때문에 변비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물을 주기적으로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변비를 피하기 위한 두 번째 방법은 걷는 것이다. 굳이 복도를 나갈 필요도 없이 병실 안에서 슬슬 걸으며 손바닥으로 배를 시계방향으로 문질러 주었다. 그렇게 5분 정도 걷다보면 배변의 신호가 왔다. 나의 노하우로 그렇게 시원하게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 뿌듯했다. 아프기 전에는 별일 아닌 일이 아프고 나서야 크게 다가왔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자는 병실 복도에 붙어있는 문장이었지만, 환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것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제1의 법칙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완치가 된 후에도 위 법칙을 잘 지키려 노력한다. 규칙적인 식사를 하고, 밤에는 늦지 않게 푹 자며, 매일 아침에는 화장실에 간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건강을 위해 위의 문장을 잘 지키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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