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께서 내게 특별한 선물을 주셨지만 그것을 모르고 살았다. 병원에 입원하기 몇 달 전만 해도 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오전 7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집 앞에 있는 역에 뛰어가 전철을 타서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방과후에는 공부를 하다가 저녁에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했다. 그렇게 밤 12시 즘에 집에 들어가면 부모님이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시며 나를 반겨주셨다. 정말 평범한 대학생의 생활이었지만 아프고 나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일상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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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수검사와 요추천자의 후유증으로 거의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2주일 정도 누워있자 허리의 뻐근함, 어지러움과 두통이 조금씩 잦아들었고, 침대에서 일어나 한발자국씩 걸음을 옮겨보았다. 나는 막 태어난 송아지처럼 다리가 후들거려 이동형 링겔대를 잡고 겨우 발걸음을 옮겼다. 침대에 오래 누워있어서 허벅지와 다리의 근육이 모두 빠진 것이었다. 아프기 전에는 군대를 제대한 이후여서 달리기 등 여러 운동능력이 최상이었는데, 이제는 걷는 것도 힘들었다. 발이 땅바닥에 붙은 것 같아 위로 점프할 수도 없었다. 전철을 잡기 위해 역 계단을 뛰어다니던 모습이 떠올랐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그 뜀이 2주 만에 불가능한 움직임으로 바뀌어버렸다. 사람의 몸이 이렇게 나약한 존재였던가.
나는 일상을 잃어버리고서야 건강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지금 누군가 나에게 제일 소중한 것을 물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나의 건강’이라고 말한다. 돈도 집도 자동차도 아니다. 부모님의 건강, 친구의 행복보다 소중한 것이 바로 나의 건강이다. 내가 건강해야 돈을 벌어서 집도 사고 자동차도 살 수 있다. 내가 건강해야 부모님한테 효도도 하고, 같이 여행도 다니며, 혹시 아프시면 병간호도 할 수 있다. 내가 건강해야 친구가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고, 같이 술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건강을 챙겨야 다른 사람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 본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면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도 없다.
건강은 본인이 챙겨야한다. 다른 사람의 건강을 챙기면 그것은 잔소리가 되고 오지랖이 된다. 최악의 경우 오히려 관계가 멀어지고 감정이 상할 수도 있다. 본인이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스스로 챙겨야한다. 그런데 그것은 아프기 전에는 깨닫기 힘들다. 골초가 폐암에 걸린 뒤에야 금연을 하고, 술 중독자가 간암에 걸린 뒤에야 술을 끊듯이 말이다. 나는 주위 사람들과 전화 통화를 하고 끊을 때 무리하지 말고 건강 잘 챙기라는 말로 마무리를 한다. 독자분들도 이 글을 읽으며 건강을 잘 챙기셨으면 좋겠다. 건강을 잃어본 사람으로서 드리는 조언(강요가 아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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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 소중함과 더불어 깨달은 것이 있다면 바로 겸손한 삶의 태도이다. 나는 아프기 전에 매우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었다. 안정적인 가정환경 속에 즐거운 대학생활을 누렸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밝은 미래를 꿈꾸었고, 인생에 대해 아무 걱정도 두려움도 없었다. 정말 오만한 생각이지만 나에게는 신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프고 나서야 삶에 대해 겸손한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병원 생활을 오래 하면서 나처럼 갑자기 병에 걸린 사람, 다친 사람들을 정말 많이 보았다. 병이나 사고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자신의 건강을 매달 검사해주는 주치의가 있거나, 미국 대통령이 타는 방탄 자동차를 타지 않는 이상 인생의 위험은 피할 수 없다. 하루아침에 불치병 환자가 될 수도 있고, 사고로 장애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하루하루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겸손하게 살아야한다.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평온함은 특별한 선물이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알게 된 삶의 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