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친구란 어떤 친구일까? ‘친구’는 가깝고 매일 보는 사이이지만 그 정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게 그럴 기회가 찾아왔다.
병을 겪으면서 많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병원에 처음 입원했을 때 맨 처음 찾아온 친구는 Y라는 친구였다. 대학교 동아리 친구였는데, 아프다는 소식(심지어 그 당시에는 그렇게 큰 병인 줄 모르는 상태였다)을 듣고 수업을 마친 후 한 걸음에 달려와 주었다. 내가 병원에서 심심해할까봐 책도 한 권 사다주었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학창시절부터 알고 지낸 오래된 친구들부터 이십대에 대학교, 군대에서 만난 친구들까지 놀러가기 좋은 봄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날, 병원으로 그리고 우리 집으로 문병을 와주었다. 친구 R은 매일 내 옆에서 간병하시는 아버지 대신 밤을 새서 병원에 있어주기도 했다. 그런 친구들이 있어서 참 든든했다. 많은 친구들의 응원과 사랑을 받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고 큰 힘이 되었다.
모든 친구들에게 응원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나도 평범한 사람인지라 멀어진 친구도 있다. 대학교 음악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였는데 정말 친해서 항상 붙어다녔다. 동아리 생활도 같이하고 합주 연습이 끝난 후에는 술도 자주 마셨다. 그 친구는 술을 좋아해서 같이 얼큰하게 취한 날에는 우리집에 와서 자고 다음날 우리 어머니가 끓어주시는 해장국도 먹었다. 그렇게 친한 친구였는데 한 번도 문병을 오지 않았다. 그 친구가 다른 곳으로 멀리 가거나 바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입원한 병원과 학교는 불과 30분 거리였다. 그는 즐겁게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처음부터 없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나는 술친구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술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에게 친구는 술을 마시는데 필요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술친구가 사라지면 다른 친구와 술을 마시면 된다. 그 친구에게 나는 그런 대체 가능한 존재일 뿐이었다. 좋은 친구는 힘들 때 찾아오고, 나쁜 친구는 잘나갈 때 찾아온다. 수영장에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을 하는지 알 수 있듯이, 내가 위기에 처해서 별 거 아닌 존재가 되면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 그제서야 알 수 있다. 나는 한 명의 친구를 잃었지만, 좋은 친구들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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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요양을 하던 중 대학교 고시반에 가서 짐을 빼야했다. 치료와 회복기간이 짧지 않을 것이고, 아픈 몸으로 고시공부를 하는 것도 무리였다. 고등학교 친구 P의 차를 얻어 타고 오랜만에 학교에 갔다. 학교는 내가 없어도 그대로였다. 학생들은 캠퍼스에서 즐거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활기가 느껴져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나도 아프지 않았다면 저들처럼 웃는 얼굴로 대학생활을 하고 있었을텐데. 고시반에 가니 선배들이 나를 반겨주며 위로해주었다. 바쁜 수험생활 중에 B병원까지 문병 온 고마운 형들이었다. 공부하던 두꺼운 수험서와 개인 짐을 들고 차에 실었다.
활동하던 음악 동아리방에도 잠깐 들렀다. 방 안에서는 기타와 베이스, 드럼 등 악기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내 이십대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동아리방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즐거운 분위기인 그곳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다. 가슴에 히크만을 꼽고, 삭발한 머리에 비니모자를 쓴 나는 왠지 그곳과 어울리지 않은 느낌이었다. 당시의 나는 동아리방보다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았다. 회복 후 다시 오겠다고 생각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가족과 친척은 피가 섞인 관계여서 가까운 사이지만, 친구는 알고지낸 지 오래되기도 한 마음이 잘 맞는 사이이다. 가족에게 터놓을 수 없는 고민을 친구에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서로 짓궂은 농담이나 장난을 치기도 한다. 친구들은 나를 환자로 대하면서도 환자처럼 대하지 않기도 했다. 그 부분이 나는 좋았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다보면 어느새 내가 환자인 것을 잊고 있었다. 혹시 친한 친구가 병원에 입원했다면 꼭 문병 갈 것을 추천한다. 친구가 설령 안와도 된다고 이야기해도, 막상 당신을 만나면 반기고 고마워 할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서, 당신이 힘들고 아파서 병원에 누워 있는데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가 연락도 없고 찾아오지도 않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해보면 답이 나온다.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고 가족 구성원이 적은 핵가족 시대지만, 옆에 친구라는 존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