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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준 Jul 18. 2022

17.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와 허물없이 친한 아들이 얼마나 있을까? 나도 다른집처럼 아버지와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하지만 병원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는 가족이라는 사실과, 아버지는 나의 든든한 버티목이라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B병원에서 한 달 넘게 치료를 받는 동안 아버지가 병실에 상주하시며 나를 간병해주셨다. 아픈 골수검사를 받을 때는 내 손을 꼭 잡아주셨고, 항암치료 후에 걷기도 힘들 때 나를 부축해주셨다. 낮에는 내 말동무가 되어주시기도 했고, 행여나 의료사고가 나지 않을까 독한 항암제를 맞을 때에는 옆에서 꼼꼼하게 확인하셨다.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내가 짜증을 낼 때면 아버지가 다 받아주셨다. 밤에는 딱딱한 간이베드에 쪽잠을 주무시고, 누군가 교대를 해주면 그제서야 잠깐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다시 병원으로 오셨다. 

 가족이 아니라면 어느 누가 이렇게 나를 케어해줄 수 있을까. 사실 가족이라도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긴 기간 동안 싫은 내색이나 짜증 없이 내 옆을 든든하게 지켜주셨다. 어쩌면 하느님 아버지의 존재가 너무도 바빠서, 자식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아버지를 내려보내셨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나중에 자식이 생긴다면 맹목적으로 희생할 수 있을까. 우리 아버지만큼 할 자신은 없다. 지금은 아버지가 그저 대단하고 감사한 분이라는 생각뿐이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는 내 옆에서 최선을 다해 나를 돌봐주셨고,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렇게 잘 회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래되었지만 B병원에 있던 날이 가끔 떠오른다. 모두가 잠든 밤, 나는 하얀 베드 위에 누워있고 아버지는 옆 간이베드에 누워서 내 손을 잡아주신다. 힘들지만 그럼에도 평화로운 날이었다. 


* 글에 담지 못한 이야기와 정보는 인스타그램에 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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