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허물없이 친한 아들이 얼마나 있을까? 나도 다른집처럼 아버지와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하지만 병원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는 가족이라는 사실과, 아버지는 나의 든든한 버티목이라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B병원에서 한 달 넘게 치료를 받는 동안 아버지가 병실에 상주하시며 나를 간병해주셨다. 아픈 골수검사를 받을 때는 내 손을 꼭 잡아주셨고, 항암치료 후에 걷기도 힘들 때 나를 부축해주셨다. 낮에는 내 말동무가 되어주시기도 했고, 행여나 의료사고가 나지 않을까 독한 항암제를 맞을 때에는 옆에서 꼼꼼하게 확인하셨다.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내가 짜증을 낼 때면 아버지가 다 받아주셨다. 밤에는 딱딱한 간이베드에 쪽잠을 주무시고, 누군가 교대를 해주면 그제서야 잠깐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다시 병원으로 오셨다.
가족이 아니라면 어느 누가 이렇게 나를 케어해줄 수 있을까. 사실 가족이라도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긴 기간 동안 싫은 내색이나 짜증 없이 내 옆을 든든하게 지켜주셨다. 어쩌면 하느님 아버지의 존재가 너무도 바빠서, 자식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아버지를 내려보내셨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나중에 자식이 생긴다면 맹목적으로 희생할 수 있을까. 우리 아버지만큼 할 자신은 없다. 지금은 아버지가 그저 대단하고 감사한 분이라는 생각뿐이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는 내 옆에서 최선을 다해 나를 돌봐주셨고,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렇게 잘 회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래되었지만 B병원에 있던 날이 가끔 떠오른다. 모두가 잠든 밤, 나는 하얀 베드 위에 누워있고 아버지는 옆 간이베드에 누워서 내 손을 잡아주신다. 힘들지만 그럼에도 평화로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