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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준 Aug 01. 2022

21. 너무 절망적이면 눈물도 나지 않는다(1)

 환자에게 절망의 끝은 어디일까? 치료방법은 알지만 할 수 없는 상황, 손을 조금만 더 뻗으면 완치라는 목표에 다다를 수 있는데 닿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절망이 아닐까.

 C병원에서 2차 공고를 위한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혈액에 있는 암세포를 완전히 죽이기 위해 소위 말하는 핵폭탄 급의 항암제가 몸에 투여되었다. B병원에서의 항암치료가 첫 치료라 힘들었다면 C병원에서의 치료는 약이 너무 세게 느껴져서 힘들었다. 실제로 얼마나 독한 항암제가 몸에 들어갔는지는 잘 모른다. 항암제를 맞고 온몸이 쑤시듯 아팠다. 집에서 한 달 동안 잘 먹고 요양하며 체력을 올려서 병원에 왔지만 몸이 견디질 못했다.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서 고통에 몸부림쳤다. 도대체 나한테 어떤 약을 투여한거야? 머릿속에서 분노와 궁금증이 일었지만 몸이 너무 힘들어서 따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할 수 있는 일은 비상벨을 겨우 눌러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간호사를 부르고, 몸이 너무 아프니 진통제를 놔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알약, 그 다음에는 링거를 달아주었다. 그래도 몸이 너무 아파서 견딜 수 없자,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먀약성 진통제인 모르핀을 놔주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긴 밤을 보냈고, 아침이 밝아오고 나서야 통증이 조금 줄어들어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죽지 않아 다행이었다. 

* * *

 항암치료를 받으며 동시에 조혈모세포(골수세포) 이식을 위한 작업도 들어갔다. 내가 걸린 백혈병 타입은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아야 완치율이 높고, 단순 항암치료에서 끝난다면 재발의 위험이 있었다. 이식은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치료의 마지막 단계였다. 병원에서는 관련 기관을 통해 이식이 가능한 조혈모세포 유전자를 찾았다. 그 결과 유전자가 일치하는 한 신청자가 있었고, 기관에서 연락을 취해 이식이 가능한지 물었다. 환자나 보호자는 이식 희망자의 개인정보를 알 수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되었다.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선의의 기증이 나쁘게 변질될 우려가 있어서였다. 며칠 동안 우리 가족은 기증 희망자의 이식 가능 여부에 대한 연락을 기다렸다. 그 사람의 대답에 나의 생사여부가 달려있었다. 며칠이 몇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 사람의 응답은 ‘No'였다. 이식을 하고말고는 개인의 자유이고 각자에게 나름 사정이 있겠지만, 나도 평범한 사람인지라 그 사람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며칠 정도 아프고 불편하면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일이지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그런 고생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라도 만약 골수기증을 하겠냐고 연락이 온다면 무섭고 고민을 많이 할 것 같다. 

 몇 년 전 배우 최강희 씨가 생면부지의 모르는 사람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해서 언론에 나온 적이 있었다. 본인은 그것이 선행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려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름다운 선행이다. 연약한 몸의 여배우지만 그 정신만큼은 그 어느 누구보다 강한 분이라 생각하고, 백혈병을 앓았던 사람으로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참고로 최강희 씨는 2007년에 조혈모세포이식을 하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 세상 쿨하게 해외로 화보 촬영을 떠났다. 참 멋진 사람이다. 


* 글에 담지 못한 이야기와 정보는 인스타그램에 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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