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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준 Sep 15. 2022

27. 포기하지 않으면 생기는 일들(2)

 두 분으로부터 들은 반일치 조혈모세포 이식은 동아줄 같은 것이었다. 보통 조혈모세포 유전자가 75% 이상 일치해야 이식을 하는데, 이 치료법은 유전자가 반만 맞아도 이식을 했다. 부모나 형제의 경우 유전자가 최소 50% 이상 맞아서, 나의 경우 부모님이나 여동생에게 이식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에 반일치 조혈모세포 이식은 빅5 병원 중 하나인 D병원에서 시행했고, 도입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케이스가 별로 없었다. 요즘에야 다른 병원에서도 반일치 이식을 하고 있고, 연구 성과도 많이 나왔지만 그때에는 실험적인 단계였다. 


 그 정보를 접하고 나서 나와 부모님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과, 한편으로는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D병원에 진료 예약을 잡았다. 예약을 기다리던 그 며칠이 몇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진료날이 왔고, 채혈실에서 기본적인 피검사를 진행한 후 담당 의사선생님을 만났다. 아버지 나이대의 선생님은 인자한 얼굴로 우리 가족을 맞아주셨다. 예전 병원에서 받았던 데이터와 채혈검사 결과를 꼼꼼히 보시고, 선생님은 ‘나를 믿고 같이 치료받아보자’라고 말씀해주셨다. 십 년이 훨씬 넘은 일이지만 그 장면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병원생활을 몇 달 동안 해보니 ‘나를 믿고’, ‘확실히’ 라는 말을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만났던 의료진들 모두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었지만, 백혈병이라는 것이 생존률도 낮고 언제 어떻게 잘못될지 모르는 위험한 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도 확실하게 ‘나을 수 있다’, ‘고칠 수 있다’라는 확답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처음 본 선생님의 확신에 찬 대답에 우리 가족은 자신감과 신뢰를 갖고 반일치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기로 결정했다.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우리 부모님은 눈물을 글썽이셨고, 나도 다리에 힘이 풀려 의자에 털썩 앉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었다. 그날로 C병원에서 퇴원 수속을 밟고, D병원에 다시 입원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했다. 어쩌면 마지막 싸움이 될지도 몰랐다. 승패의 결과 또한 아무도 몰랐다. 가본 사람이 별로 없는 미지의 가시밭길이었지만 누군가는 가야했고, 그 누군가가 바로 퇴로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절박한 나였다. 


* 글에 담지 못한 이야기와 정보는 인스타그램에 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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