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방이 세 개 있는데 저녁마다 조용히 비어있었다. 엄마아빠가 쓰시는 안방에는 커다란 붙박이 장롱, 할아버지께서 사주신 오래된 오빠의 피아노, 그리고 화장대가 있었다. 오빠방에는 작은 침대와 옷장, 많은 책들이 꽂힌 책장 그리고 컴퓨터 책상이 있었고, 내 방에도 책장 네 개와 커다란 책상이 덩그라니 놓여있었다. 방이 빈 이유는 아빠랑 오빠는 병원에 계시고 엄마와 나는 거실에 이불을 깔고 같이 누워서 잠들곤 했기 때문이다. 오빠가 병원에 입원하고 집 분위기가 바뀌었는데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조용하고 너무 차분해서 우울했다. 그리고 분명 큰 병은 아니라고 했는데 침울해보이는 엄마의 표정은, 지금 무서운 일이 우리 가족에게 닥쳐왔다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은 그 날 저녁에 거실에 누워서도 들었다. 째깍째깍 초침 소리만 조용히 들리는 새벽, 불은 다 꺼져있지만 거실 큰 창을 통해 맞은편 아파트의 불빛과 달빛이 들어와 거실을 비추어 그렇게 깜깜하진 않은 새벽이었다. 하루하루 말없이 수심이 깊어지는 엄마의 얼굴, 우리가족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엄마가 잠드신 후 오랜 뒤척임 끝에 직감을 따라 엄마의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보낸 메시지함에서 발견한 최근 문자에는 엄마가 신부님께 오빠 병명을 알려드리고 기도를 부탁드리는 내용이 있었다. 조용한 새벽 나는 우리 집이 변화한 이유를 알게 되었고, 소리죽여 울었다. 불은 켜지 않고 거실 구석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는 나를, 주무시던 엄마가 깨어나 발견하시고는 아무말 없이 안아주셨다. 그리고 엄마도 참고 계시던 마음의 응어리를 눈물로 흘리셨다. 그렇게 오빠가 혈액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우리 가족은 그 병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오빠 곁에서 그 병이 영원히 사라지고 우리 집의 방들에 다시 주인이 오길 바라며...
* 본글과 시간 순서상 맨 첫 병원에 입원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