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유준 Oct 06. 2022

33. 여기서 죽을 수는 없지(1)

 이식일이 다가오자 몸에 투여되는 약의 강도도 세졌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여동생도 병원에 외래로 와서 백혈구 촉진제를 맞으며 이식 준비를 했다. 이식 3일 전에는 내가 입원한 병동 위층에 입원하여 케모포트를 달았다. 케모포트는 반복적인 정맥주사가 필요한 환자에게 팔에 주사바늘을 꽂는 대신 중심정맥에 관을 삽입하는 장치였다. 그 관을 통해 동생의 조혈모세포를 추출할 것이었다. 쇄골 부근에 장치를 달아 나중에 상처라도 남으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흉터는 남지 않았다. 또한 골수검사 방식처럼 굵은 바늘을 동생 뼈에 넣지 않은 일도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동생은 이틀 동안 조혈모세포를 뽑았다. 

* * *

 10월 28일은 내가 다시 태어난 날이다. 당시에 몸에 토끼혈청과 이름도 모르는 강력한 약물들이 투여되어서 정신을 못 차렸다. ‘토끼’는 굉장히 귀여운 느낌이지만 ‘혈청’이라는 단어가 뒤에 붙으니까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격리실에 입원해서 매일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그날은 휴대폰을 들 힘도 없었다. 화장실도 부축을 받아서 겨우 갈 정도였고, 하루 종일 침대에 축 늘어져있었다. 그러던 중 간호사 선생님이 동생의 조혈모세포가 든 붉은 팩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것은 히크만에 연결되었고, 붉은 피가 나의 몸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추운 기운이 들어 얇은 이불을 목 아래까지 올려서 덮었다. 이식이 잘되기를, 건강한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성모송을 외었다. 골수검사를 받을 때마다 외우던 것이 습관이 되었다.      

주님 저희 기도를 들어주소서

그리스도님 저희 기도를 들어주소서     

 어둠 속에서 나는 유영하고 있었다. 여기는 죽음의 영역인가, 삶의 영역인가. 나의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얼마나 부족한 삶을 살았던가. 그것에 대한 죗값을 호되게 치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살고 싶었다. 부족한 삶의 퍼즐을 다시 채우고 싶었다. 스물다섯 살, 이렇게 병으로 죽기에는 젊은 나이였다. 


* 글에 담지 못한 이야기와 정보는 인스타그램에 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instagram.com/ihave.tolive      

매거진의 이전글 32. 9회말 끝내기 역전 홈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