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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준 Oct 13. 2022

35. (번외)동생의 이야기-피를 나눈 남매

 방사선 치료, 무균실 장기 입원, 다른 병원에서의 방사선 치료, 무균실 장기 입원의 반복... 오빠는 긍정적인 성격을 가지고 홀로 그 시간들을 잘 이겨내주었다.

 다행히도 병원마다 다른 치료방법을 가지고 있었고 조혈모세포 유전자가 50%만 일치해도 이식이 가능한 병원에서 오빠의 새로운 치료가 시작됐다. 엄마아빠의 자녀로 나와 오빠는 50%가 일치했고, 일치 결과를 들은 나는 조혈모세포를 줄 수 있게 되어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 시기의 나는 정말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서, 내가 이식하는 것이 기특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주위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오히려 화가 났다. 사랑하는 우리 오빠를 위해 당연히 내 목숨도 줄 수 있는데 왜 기특하다는 이야기들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그 당시에는 모든 말이 좋게 들리지 않았고 과민반응 했던 거 같다.

* * *

 조혈모세포를 채취하기 위해 채혈과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정맥혈관이 넓은 남성의 경우는 팔에, 혈관이 좁은 사람은 목의 정맥에 카테터를 삽입한 후 조혈모세포를 원활히 얻기 위한 백혈구 촉진제를 맞는다. 

 우선 목에 카테터를 삽입하는 시술을 했다. 하얀 병원 벽에 길다란 수술실 중간 통로를 지나, 약 20도의 수술실 방안으로 들어갔다. 수술실은 깔끔하면서 삭막해보였다. 수술복을 입고 수술대에 누운 내 주위로 마스크를 모두 한 의사선생님들이 서 있었다. 그때는 코로나 시대처럼 마스크가 필수가 아닐 때라 마스크를 쓴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어색했다. 부분마취를 하고 누워있는데 그때까지 수술실이 그렇게 춥고 외로운 곳인지 몰랐다. 우리 가족이 오빠 곁에서 응원했지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오빠가 홀로 감내해야했을 그 시간들이 얼마나 길고 두려웠을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추운 수술실에서 지금까지 오빠 혼자 직면했을 공포와 외로움이 상상돼 오빠에게 미안하고, 우리에게 힘들다는 말도 못하고 오롯이 견디었을 모습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 * *

 카테터를 삽입하기 위해 메스로 부위를 절개했을 때 통증은 없지만 온도는 그대로 느껴져, 뜨거운 액체가 순식간에 내 어깨위로 퍼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시술은 금방 끝났다. 수술실을 나와 복도 통로에서 베드 이동을 기다리며 누워있는데 오빠 생각이 나서 눈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흘렀다. 통로에서 울고 있으니 다른 수술방을 오가는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이 휴지를 주며 위로해주셨다. 원래는 베드를 이동해주는 직원이 오셔야했지만, 울고 있는 내가 안쓰러우셨는지 간호사님이 보호자분이 밖에 계시냐고 묻고는 바로 베드를 옮겨주시어 수술실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수술실에서 나올 때까지 나는 계속 울고 있었고,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던 엄마와 마주했을 때는 서로를 마주보고 동시에 눈물이 왈칵 터졌다. 아마 엄마도 오빠를 생각하면서 흘리셨을 눈물이라 생각된다. 

 백혈구 촉진제를 맞고부터는 구토를 많이 했다. 성분채혈 장비가 소음이 커서 구토는 올라오는데 소음까지 괴롭혀 머리가 아파 힘들었다. 다행히 약을 먹고부터는 구토는 금세 멈췄고 조혈모세포 채취도 잘 마칠 수 있었다. 

 원래는 조형모세포 기증 시 기증자와 수여자는 서로를 알 수 없지만, 나는 가족인 우리 오빠에게 준 거여서 오빠를 만날 수 있었다. 무균실안으로 들어가 만난 오빠는 많이 야위었고 힘들어보였지만 웃고 있었다. 눈물이 나왔지만 오빠가 밝게 웃으며 병을 이겨내고 있어서 다행이었고, 그런 오빠를 위해 내가 무언가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 글에 담지 못한 이야기와 정보는 인스타그램에 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instagram.com/ihave.to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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