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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준 May 27. 2022

2. 화이트데이에 떨어진 날벼락

2. 화이트데이에 떨어진 날벼락


 화이트데이는 3월 14일로 보통 남자가 사랑하거나 호감있는 여자에게 달콤한 사탕을 선물하는 날이다. 화이트데이는 매년 있는 이벤트지만, 나에게 2009년 화이트데이는 절대 잊을 수 없다. 그날이 결코 달콤한 날이어서가 아니라 내 인생의 큰 시련이 시작되는 첫 날이기 때문이다.  

* * *

 2009년의 화이트데이는 토요일이었는데, 여자친구와 맛집에 가서 맛있는 것을 먹기로 약속했다. 데이트하기 전에 학교 앞에 있는 작은 병원에 들렀다. 새해부터 시작된 기침감기가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침이 어느 정도로 심했냐면, 밤에 잠을 거의 못 잘 정도였다. 병원에 가서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 참 신기한 일은 콧물도 안 나고, 다른 감기 증상은 없는데 기침만 계속 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상한 일이 또 있었다. 그것은 잠이 많아 졌다는 것이었다. 고시반이나 집에서 공부를 하면, 앉아있는 시간 대부분 책상에 엎드려서 잤다. 나는 원래 잠이 많은 편이 아니다. 설령 책상에서 자더라도 30분 정도만 자면 저녁까지 쌩쌩했다. 하지만 기침이 시작될 때부터 책상에 앉기만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쏟아졌다. 제대 후 술도 거의 안마시고, 담배도 끊어서 몸에 위험을 주는 일은 없었다. 그냥 공부하느라 피곤해서 그러한 줄 알았다. 멈추지 않는 기침과 쏟아지는 잠. 어떻게 보면 연관성이 별로 없어 보였지만, 그것 둘 다 내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 

 학교 앞 병원에 가서 증상을 이야기하고, X-Ray를 찍었다. 단순 폐렴일줄 알고 대충 약 좀 지어주겠지 생각했는데, 의사가 검사 결과를 보고 지금 바로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해서 나는 좀 당황했다.

“선생님, 저 오늘 약속있는데 다음 주에 가면 안 될까요?”

 오늘 데이트를 미루면 분명히 여자친구가 실망할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농담섞인 질문에도 선생님의 표정은 말없이 굳어있었다. 폐에 물이 찬 거 같다고는 했는데, 무슨 병이냐고 물어도 선생님이 정확한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 ‘작은 병원이라 의사 실력이 부족한가?’ 의심도 들었다(이 의사의 판단은 사실 정확했다). 알 수 없는 불길한 기분이 조금 들었지만, 별 거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여자친구에게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점심 데이트를 미뤘다(여자친구를 다시 본 건 그날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난 일이다). 그리고 부모님께 전화를 드린 후 동네에 있는 A병원으로 향했다.

* * *

 A병원은 빅5처럼 유명한 병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네에서 환자도 많고 나름 규모가 큰 대학병원이었다. 호흡기내과에 가서 진료를 본 후, 피검사도 하고 X-Ray도 다시 찍었다. 의사 가 검사 결과를 보고는 학교 앞의 병원 의사처럼 좋지 않은 표정을 지었는데 역시 입을 꾹 다물었다. 두 병원 의사가 연이어서 병명을 시원하게 말해주지 않아서 나는 매우 답답했다. 선생님은 일단 입원해서 여러 가지 검사를 추가로 해보자고 했다. 나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앞에 앉은 의사의 말을 따라야만했다. 

 그날로 나는 입원수속을 밟고 병실로 들어갔다. 셔츠와 청바지를 벗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내 모습은 참 어색했다. 운동화를 신고 데이트를 가야할 이십대 학생이, 병원에서 신기 편한 슬리퍼를 신었다. 나는 살면서 병원에 입원 해본 적이 없었다. 어디가 크게 다쳐서 부러지거나 심지어 뼈에 금이 간적도 없는 건강한 스물다섯 살 청년이었다. 병실은 친구나 친척분이 입원했을 때 문병을 가는 나와 큰 상관없는 장소였다. 내가 그곳에 입원해 있었다. 

 6인실에 들어가니 다른 환자들이 나와 같은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있거나 앉아있었다. 병실 정면에는 공용 냉장고와 그 위로 작은 티브이가 놓여 있었고, 각 침대별로 커튼이 달려있었다. 병실은 진료실과 다른 느낌이었다. 아래층의 진료실이 많은 환자들로 정신없고 시끌벅적했다면, 위층의 병실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방처럼 정적이었다. 환자들도 무기력하게 느릿느릿 움직이고, 이른 시간이었지만 자는 환자가 있어서 대화도 조용조용, 티브이 소리도 낮게 맞추어야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환자복 때문인지 몸이 더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이십대 청년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고, 몸이 근질근질거렸다. 

* * *

 병실의 불은 빨리 꺼졌고, 사람들은 커튼을 치고 잤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몇 시간 전만 해도 평범한 대학생이었는데 환자가 되어 병원 침대에 누워있다니. 나를 놀리려고 거대한 스케일의 몰래카메라를 찍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여기에서 딱 끊어주기를 바랐다. 이경규 같은 MC가 짠 하고 나타나서 쇼였다고 말해준다면 나는 꿀밤을 한 번 박아주고 쿨하게 넘길 자신이 있었다. 부질없는 상상이었다. 그래도 큰 병은 아닐거라고, 며칠 검사받고 치료 받으면 금방 퇴원할 거라 생각했다. 

 희망이라는 감정은 아니었다. 이때까지 만해도 절망적이지는 않았으니까. 희망은 더 절박하고 힘든 상황에서 고귀하게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이 ‘설마 이런 안 좋은 일이 나한테 생기겠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다가올 절망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큰 존재가 눈앞에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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