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병원에서 하는 검사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A병원에 입원하고 정확한 병을 찾기 위한 여러 검사가 진행되었는데, 진료 받을 때 흔히 하는 검사는 아니었다.
그 첫 번째는 동맥에서 채혈하는 것이었다. 간호사가 아니라 인턴이나 레지던트로 보이는 젊은 의사가 병실로 와서 손목 안쪽에 있는 커다란 혈관에 주사기를 꼽고 채혈을 했다. 팔목에 하는 일반적인 정맥 채혈은 그냥 따끔한 수준이었는데, 동맥 채혈은 꽤 아팠다. 작은 바늘이 아니라 커다란 송곳으로 찌르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날카로운 고통이 아닌 묵직한 고통이어서 아픔은 더 크게 다가왔다. 나는 당시 입원 초기여서 꽤 호기로운 청년이었다. 그렇게 아프지 않은 척 애썼지만 사실 정말 아팠다. 묵직한 고통은 피를 뽑고 난 이후에도 며칠 동안 계속 되었고 손목이 한동안 얼얼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동맥에서 채혈을 또 해야했는데, 내가 너무 아팠다고 말했더니 방광부분(아니면 고환 부분인지 정확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에서 채혈하는 덜 아픈 방법도 있다고 했다. 젊은 의사 앞에서 바지를 내리는 게 창피했지만 그 아픈 동맥 채혈을 또 할 자신이 없었다. 정말 아프면 부끄러운 것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나는 덜 아픈 동맥 채혈 방법을 택했다. 의사가 내 베드에 커튼을 치고 방광부분 쪽에 주사기를 꽂고 피를 뽑았다. 선생님 말대로 훨씬 덜 아팠다. 이 방법을 진즉에 좀 알려주시지. 야속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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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베드에 누워있는데 폐에 고인 물을 검사하기 위해 채취해야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건 또 뭐지? 생전 처음 받는 검사를 경험하며 느낀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병원 진료실에서 하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고 좀 더 정밀한 검사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지는지 어떤 수준의 고통이 수반될지 정보가 전혀 없었다. 미지의 공포는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환자의 입장에서는 불가피했다. 의료진이 환자에게 필요한 검사라고 말하면 거부할 수 없었다.
몇 시간 뒤 나는 병동의 한쪽에 있는 검사실로 향했다. 젊은 의사가 큰 주사기를 손에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사기의 위용(?)에 나는 채취 시작도 하기 전에 오금이 저려왔다. 나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상의를 목 아래까지 걷어 올렸다. 그는 등 뒤에서 나의 갈비뼈를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폐의 위치를 확인했다. 차가운 알콜솜을 갑자기 그곳에 문지르자 나는 깜짝 놀랐다. 의사는 별 거 아니라는 알콜솜만큼 차가운 말투로 검사 ‘시작할게요‘라고 말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했고 굵은 주사 바늘이 내 등 뒤로 들어왔다. 선생님은 주사기의 피스톨을 천천히 잡아당기며 폐에 고인 물을 뽑기 시작했다. 검사 과정이 걱정했던 것 보다 크게 아프지는 않았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주사 바늘이 천천히 뽑혔고, 의사는 채취가 끝났다고 말해주었다. 주사기 안에는 내 폐에 있던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괴기한 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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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인터넷에 검색해서 안 사실인데, 폐(흉막강)에 고인 물을 ‘흉수’라고 하는데 이게 생기면 기침을 하게 되고 호흡이 곤란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짧은 거리를 달려도 숨이 금방 찼다. 군대를 제대한 지 얼마 안 되었던 시기라 심폐지구력은 자신 있었는데 그것도 이상한 부분이었다. 기침 증상을 포함한 몸에 나타난 이상 증세의 원인은 흉수였다. 그러면 흉수는 왜 찼을까? 우리 가족은 병원으로부터 그 답변을 기다렸다.
흉수 채취를 마친 나는 병실로 돌아왔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두 가지 검사는 충격적이었다. 세상에 이런 검사를 내가 해보다니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것보다 더 아프고 새로운 검사는 이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여기까지가 내가 받을 검사의 끝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겪게 될 병은 훨씬 큰 고통과 과정을 겪어야 할 높고 험난한 산이었다. A병원에서 받았던 검사는 산의 입구 같은 것이었고 나는 산 아래 있어서 그 높이를 가늠하지 못했다. 아니, 가족이나 여자친구도, 학교에서 나를 기다리던 친구들도 전혀 알지 못했다. A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병실 복도에 있는 주인 없는 휠체어를 재미삼아 탔고, 평소에 읽지 못했던 책을 병원 베드에 누워 읽었다. 그 기다림은 고난으로 가득한 행군이 시작되기 전 누리는 잠깐 동안의 여유였다. 한편으로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두려웠다. 그래도 별 거 아니겠지? 막연한 희망과 두려움이 상존하는 병동의 밤이 계속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