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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준 Jun 02. 2022

4. 좋은 의사, 나쁜 의사, 양심적인 의사

 어떤 의사가 환자에게 좋은 의사일까? 아프기 전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A병원에서 동맥 채혈과 흉수 채취 등 이런저런 정밀검사를 하고 림프종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나는 병실에 있어서 직접 듣지는 못했고 부모님이 담당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셨다. 의사 선생님은 이제 조직검사를 받아야한다고 했다. 아버지께서 이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하면 끝까지 치료 할 수 있냐고 물으셨더니 선생님이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림프종은 생전 처음 듣는 병이어서 치료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하셨다. 선생님은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한 후에 마지막으로 골수이식을 해야한다고 했다. 아버지가 A병원에서도 골수이식을 할 수 있는지 물으셨고, 의사 선생님이 골수이식은 힘들다고 했다. 부모님은 의사 선생님의 자식이 나와 똑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실거냐고 마지막으로 물으셨다. 의사는 잠시 고민하다 자기 자식이라면 더 큰 병원으로 전원시킬거라고 말했다. 부모님은 말없이 자리를 떠나셨고 나는 그 다음날로 퇴원수속을 밟았다. 

* * *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에 갔고, 다들 실력있는 의사가 되었지만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은 어떤 병원 소속인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나는 병원 수준의 차이가 이렇게 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큰 병에 걸린 사람은 여건이 된다면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병원의 설비와 의료기술, 연구에 대한 투자가 좋은 의사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모님한테 솔직하게 말해준 A병원의 그 의사 선생님한테 진심으로 감사하다. 만약에 자기 병원에서 끝까지 치료할 수 있다고 호기를 부렸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실적이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환자를 놓아주지 않는 의사도 보았다. 실력 있는 의사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양심 있는 의사를 만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아프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들이었다.

* * *

 부모님으로부터 내가 림프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암이나 백혈병처럼 듣기만해도 무서운 병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하게 림프에 생긴 종양이라고 이해했다. 

 A병원에서 퇴원하고 부모님께서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우리나라의 빅5 병원 중 하나인 B병원 혈액종양내과에 예약을 하셨다. B병원은 문병은 몇 번 가보았는데 내가 환자로 간 것은 처음이었다. 큰 병원답게 사람이 정말 많았다. 수납하는 사람, 예약하는 사람, 퇴원하는 사람 등등 정말 시끄러운 시장바닥 같았다. 세상에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았다니. 진료실 앞도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줄이 길었다.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으셨고, 나는 별일 아닐거라고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내 차례가 되었고 부모님과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A병원에서 받은 내 검사 데이터를 보시고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선생님은 악성 림프종이 맞다는 진단을 다시 내렸고, 오늘부터 입원하라고 했다. 법원에서 최종판결을 받은 것처럼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어머니는 다리에 힘이 풀리셔서 주저앉았고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어머니를 안고 괜찮다고, 치료 잘 받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다. 물론 당시에 나도 큰 충격을 받았고 절망적이었지만 어머니가 우시는 모습을 보니 차마 그것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나는 젊고 건강하니까 이까짓 병은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막연한’이라는 말처럼 무책임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B병원에서의 그날이 난치병이라는 긴 터널로 들어가던 순간이었다. A병원에서의 나이롱 환자처럼 여유롭게 지나던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병실에 입원하려고 했지만 남는 병실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1층 응급실에 입원해야만 했다. 말이 입원이지 응급실에서 사용하는 딱딱한 이동식 베드에 누워서 잤다.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과 의료진이 왔다갔다 거려서 거의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씻는 것도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도 불편했다. 응급실이라는 공간에 있었기 때문에 커튼 같은 것도 없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베드에 누운 나를 딱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아픈 사람이 병원에 입원하는 것도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응급실 베드에서 3일 정도 노숙 아닌 노숙을 하고나서야 위층에 있는 병동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병실로 짐을 옮기고 안심이 좀 되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입원을 하고 치료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두려움도 밀려왔다. 그렇게 B병원 병동에서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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