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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준 Jun 06. 2022

5. 눈앞에서 본 죽음

 살면서 사람이 죽는 것을 볼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B병원 응급실에 있다가 올라간 병실은 2인실이었다. 병실 안은 호텔방처럼 깔끔하고 아늑하며, 무엇보다 조용했다. 나를 포함해 두 명의 환자만 있어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내 옆 베드가 너무 조용했다. 커튼이 쳐져 있어서 옆 환자가 어떤 상태인지 잘 몰랐다. 저녁을 먹고 9시 정도 되었을까. 옆 베드에서 고통스러운 소리가 나더니 환자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보호자가 의료진을 호출했고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 안으로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나와 부모님은 무서운 마음에 병실 복도로 나와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서성거렸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몇 명의 의료진이 이동식 베드를 가지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의료진은 이동식 베드에 환자를 실어 이동했다. 그는 누워있었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천이 위로 덮여 있었다. 보호자는 그 뒤를 울면서 따라갔다. 그 모습을 본 나와 부모님은 충격을 받아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죽음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병원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곳이지만, 죽는 사람도 나오는 곳이었다. 즉, 병원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장소였다. 

* * *

 그 이후로 병원에 있으면서 죽는 환자를 몇 번 보았다. 그럼에도 B병원에서 옆 환자의 죽음을 본 일은 뇌리에 깊이 남았다. 나는 아프기 전까지 죽음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당시에 가족이나 친척, 가까운 친구 중 세상을 떠난 사람이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죽음에 대해 무관심했고 죽음은 먼 나라의 이야기 같은 것이었다. 생각이 없다보니 죽음에 대해 두려움도 별로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김광석, 지미 헨드릭스)이 요절했던 것을 떠올리며, 나도 불꽃처럼 살다가 세상을 떠나도 여한이 없을 것만 같았다. 어린 나이의 허세는 죽음의 목격 앞에서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졌다. 방금 보았던 환자처럼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인생은 시트콤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죽음이란 것을 쉽게 입에 올릴 수 없었다. 누군가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 ‘나는 사는 것에 미련이 없어’라는 호기롭게 말을 하면, 나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며 막상 그들도 눈앞에 죽음이 닥치면 절박한 마음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생명을 갈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그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시각도 바뀌었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자살률이 상위권에 있는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그저 나약하고 삶에 대한 의지가 부족한 사람으로 치부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인생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프면 그 거대하고 두려운 죽음이란 존재를 스스로 맞이하려들까. 안쓰럽다는 마음이 더 크다.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에게 ‘너만 힘든 거 아니야’라고 비난하거나, ‘왜 이렇게 나약하니?’라고 구박하는 것은 좋지 않은 방법 같다. 그것보다는 ‘네가 죽음을 생각할만큼 정말 힘들구나’라고 공감해주며 위로해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 * *

 내 옆의 환자가 망자가 되어 나간 병실은 텅 비어있었다. 어지러이 놓인 그분의 침대에 커튼이 걷혀져 있었다. 그전에는 커튼에 가려 보지 못했던, 그분의 삶을 연명해주던 의료장비들이 그분의 침대를 쓸쓸하게 지키고 있었다. 어떡해야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간호사가 들어와서 그분의 침대를 대충 정리하고 커튼을 다시 쳐주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입원한 그 병동은 중환자나, 생명이 끊기기 전의 상황이 안 좋은 환자가 있는 곳이었다. 내가 입원할 병실이 없어서 급하게 자리가 난 곳이 바로 그 병동이었다.

 밤이 늦어서 어머니는 집으로 가셨고, 아버지는 내 옆의 간이침대에 자리를 잡으셨다. 침대에 누워서 말없이 천장을 보았다. 밤이 늦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간이침대에 누운 아버지도 말이 없으셨다. 아마 아버지도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라 생각했다. 병원에 입원해서 난치병을 치료한다는 것이 결코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생은 결코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하하호호 즐거운 일만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겪을 시련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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