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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준 Jun 09. 2022

6. 굵은 바늘의 공포

 죽음만큼 두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미지에 대한 공포일 것이다. 죽음을 목격한 다음날, 빈 내 옆자리 침대에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다. 어제 그 자리에서 사람이 죽어나갔다고 말할 수는 없었고, 시신이 나간 자리에 하루도 되지 않아 환자가 들어와 자리를 잡는 것을 보고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원래 병원은 사람을 치료하며 돈을 벌고, 죽음이 흔한 장소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 날 나는 여유롭게 그런 감상에 빠질 여유도 없었다. 골수검사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골수검사는 어렸을 때 티브이에서 본 환자가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며 받은 검사로만 알고 있었다. ‘골’이라는 어감 자체에서 공포가 느껴졌다. 그런 검사를 내가 받게 된다니, 오래 살다보니 별일 다 겪는다는 생각이 들었다(스물다섯 살이면 사실 그렇게 오래 살지도 않은 나이였다). 

* * *

 아침을 먹고 감정을 추스르기도 전에 젊어보이는 두 명의 의사가 병원에서 쓰는 철제 트레이를 들고 병실로 들어왔다. 왜 이런 검사는 항상 젊은 사람들이 하는 건가 궁금했는데 물어보진 못했다. 트레이에는 주사기와 검사에 필요한 이런저런 도구가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연장같이 생긴 시술 도구에 식은땀이 났다. 나는 두 사람 앞에서 겁먹은 순한 강아지가 되어버렸다. 시키는대로 바지를 엉덩이 중간정도까지 내리고 침대에 엎드려서 누웠다. 한 의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검사를 이제 시작한다고 말했고, 내 위로 올라와 손으로 엉덩이 위의 허리쪽 부분을 만졌다. 주사기를 어디다 꽂을지 찾는 것이었다. 다른 의사와 상의를 하고 허리 아래쪽에 국소마취를 했다. 따끔했지만 그 정도는 참을만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날카롭고 굵은 주사바늘이 내 허리와 엉덩이 사이의 둔탁한 뼈로 들어왔고, 젊은 의사가 바늘이 내 뼈에 잘 박히지 않는지 온 힘을 다해 주사기를 눌렀다. 날카로운 바늘에 박힌 뼈가 너무 아팠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죽어가는 소리를 냈지만 젊은 의사는 자기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여전히 주사기에 자기 몸무게를 실었다. 이래서 젊은 의사들이 골수검사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한참을 끙끙거리다가 무언가 잘못 되었는지 두 의사는 뭐라고 속닥속닥 거리며 상의를 한 후 주사기를 다른 곳에 찔렀다. 다시 젊은 의사의 체중이 실린 채 바늘이 나의 뼈로 들어왔다. 몇 분을 다시 시도하다가 채취가 실패로 끝났다. 나는 젊은 의사에게 좀 제대로 하라고 온갖 욕지거리를 외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의대나 간호대에서 학생들끼리 서로 정맥 채혈 실습을 한다고 들었는데 골수검사도 그런 식으로 연습했다면 이렇게까지 실패하고 아프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설픈 의사가 나의 뼈를 세 번째 찔렀을 때 겨우 골수를 채취할 수 있었고, 나는 소리 지를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 * *

 검사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요추천자 검사가 남아있었다. 요추에 주사바늘을 꽂아 척수액을 뽑고 약을 주입한다고 했다. 허리뼈에 바늘을 꼽는다니 듣기만해도 무시무시했다. 나는 환자복 상의를 목 위까지 말아올리고 새우처럼 등을 말아 옆으로 누웠다. 그러자 나의 척추가 도드라지게 튀어나왔다. 젊은 의사는 나의 등에 손을 대며 위치를 확인했다. 그리고 얇은 바늘이 뼈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골수검사에서 느꼈던 묵직한 고통과는 다른 날카로운 고통이었다. 그리고 몇 초 뒤 바늘이 빠져나갔다. 

 숨 막히는 시간이 지났고 고된 노동을 마친 두 의사는 땀으로 절어있었다. 나도 땀을 흠뻑 흘려 얇은 환자복이 축축했다. 의사는 모래주머니 같은 것을 골수검사한 허리쪽에 대주었다. 나보고 4시간 이상 누워있으라고 말하고는 병실 밖으로 나갔다. 시계를 보니 그들이 병실에 들어온 지 1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 * *

 생전 처음 받은 골수검사와 요추천자는 정말 아팠다. 굵은 바늘이 들어왔던 뼈가 욱신거렸고, 척수액이 빠져나가서 그런지 두통과 어지러움증도 심했다. 그 고통과 증상은 거의 2주일 동안 지속되어서 식사하거나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고는 침대에 힘없이 누워있었다. 그 후에도 골수검사와 요추천자를 다른 병원에서 수차례 했는데 그 첫날에 한 검사가 가장 아팠다. 처음해서 아팠던 것이 아니라, B병원 의사들이 골수검사 경험이 부족해서였던 것 같다. 다른 병원에서는 골수검사실이 따로 있었는데 굵은 주사를 여러 번 꽂지도 않았고, 고통도 거의 없었다. 주사기가 뼈에 들어올 때 살짝 뻐근한 정도여서 몇 시간 모래찜질을 하고 병실까지 혼자 걸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의사들 또한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간단하게 하는 그런 검사였다. 그 두 의사가 어설프지 않고 다른 병원에서처럼 능숙했다면 내 병원 생활이나 재활이 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어지러움증으로 내내 누워있는 동안 다리의 근육이 모두 빠져버려서 걷는 것도 힘겨워졌기 때문이다. 두 의사가 원망스러웠다. 처음부터 골수검사를 잘하는 의사는 없겠지만, 막상 못하는 의사에게 걸리는 환자는 운이 없다고 하기에는 너무 큰 고통이었다. 나는 그전까지 입원을 했지만 환자라기보다는 좀 아픈 일반인에 가까웠다. 하지만 골수검사를 한 그날로 몸 상태가 완전히 무너져내렸고 진정한 환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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