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엉뚱한 자서전
#8.
중위 때 우연찮게 인터넷에서 두브로브니크(Dubrovnik)에 관한 기사 하나가 눈에 꽂혀 바로 싸이월드에 캡처를 해놓았었다. 지금 이불을 같이 덮고 자는 Kate도 중위 때 만났는데, 어느 날 '만약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신혼여행지는 내가 이미 정해놨다'라고 큰소리친 적이 있었다. 전역 후 딱 1년 뒤 4년을 만나고 웨딩마치를 올렸다. 그런데 결혼준비를 하면서 신혼여행지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불만이 많았겠지만) 보통 신혼여행지는 신부의 로망이라는데 내가 가로채버린 지 오래. 반지도 내 스타일로 디자인했는데 죄를 많이 지었네ㅡㅜ
tvN '꽃보다 누나'가 2013년작이다. 지금으로부터 벌써 12년 전. 그 이후로 한국인들에게 크로아티아 여행의 붐을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꽃보다 누나 보다 1년 먼저 가봤을 때는 코리안은커녕 중국인조차 거의 보이지 않았을 때였다. 당연히 직항도 없었다.
유럽에 한번 갔다 와봤다고 이번엔 렌터카(자신 있게 아날로그틱하게 스틱으로)를 선택했다. 물론 크로아티아가 서부유럽보다 교통이 덜 발달된 탓도 있겠다. 첫 도착지로 플리트비체(Plitvicka Jezera) 호수로 향했다. 일단 호수까지는 후진을 할 필요가 없었던지라 별 탈 없이 스무스하게 도착을 했다. 다음날 파킹 방향 때문에 후진을 해야 했다. 그런데 도무지 기어를 후진하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갖고 있는 자동차 상식을 모조리 영끌해도 답이 안 나와서 초조해지기 시작하던 찰나 용기 있게 지나가던 아저씨께 정중히 도움을 요청했다. 아저씨가 빙긋 웃으며 가볍게 후진하는 모습을 보조석에서 지켜보고선 헛웃음이 나왔다. “헕”
우리나라 스틱 후진 방식과 달리 기어봉을 힘주어 누른 상태에서 각에 맞춰 R에 맞추어야 했다. 유럽이 전부 그런 거는 아니겠지만 하필 우리가 빌린 렌터카가 그런 방식이었던 모양이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남자의 체면을 한번 구겨먹고 레알 신혼여행이 시작됐다.
크로아티아도 호텔이나 일정을 전부 한국에서 픽스하고 온 것은 아니었다. 플리트비체 첫날과 클라이맥스인 두브로브니크에서의 호텔만 예약하고 갔었던 것 같다. 크로아티아를 일찌감치 신혼여행지로 정해둔 상태에서 그래도 백지상태로 갈 수는 없어서 갈 만한 곳을 찾아보다가 해변을 하나 점찍어 둘 만한 곳을 찾아놨다.
즐라트니라트(Zlatni Rat).
사진으로만 봐도 아주 비현실적인 비치였다. 해변으로 가려면 브라치섬(Brač)으로 렌터카를 선적해서 가야 했다. 신혼여행에서 별의별 짓(?)을 다해 본다. 모래며 바다색이며 심지어 바다짠물까지 가히 극강의 환상적인 비치 그 자체였다. Kate님의 노오란 튜브를 아드리아해에 헌납하고 온 것의 옥에 티.
드디어 두브로브니크 입성!
말로 해 머 하나, 글로써 머 하나.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자여 두브로브니크를 논하지 말라. 아드리아해의 진주. 로마 황제의 휴양지. Kate님과 딱 20년 뒤에 손잡고 꼭 다시 오자 다짐했다. 이제 7년 남았다ㅋ. 다만 나는 2023년에 비즈니스 트립으로 11년 만에 자그레브를 다시 갔다 오긴 했다. 변함없는.
마지막으로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Zagreb)를 들렀다. 여기도 꼭 가보고 싶은 포인트가 있었다. 바로 성 마르카 교회(Crkva sv. Marka). 이곳 지붕 모자이크가 그야말로 예술 작품이자 크로아티아의 심벌과 같은 랜드마크다. 축구를 한 때 좋아했던(2002년이 대학 2학년때니) 나로서는 크로아티아 축구를 모를 리가 없는데, 크로아티아 축구국대 유니폼과 크로아티아 문장이 아마도 여기를 모티브로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여태껏 가본 나라 중 아직까지는 크로아티아가 첫손가락이 긴 하다. Kate님은 두 번째란다. Kate님의 첫 번째가 나에게는 두 번째 정도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