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아이유가 만들어낸 한 편의 시,
'밤편지'
2017년 당신의 플레이리스트, 단 한 곡만 남겨야 한다면?
2017년 12월 31일부터 거슬러 올라가 2017년 1월 1일까지. 휴대폰 속 사진을 훑어보면 한해가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한해를 돌아보기에 또 좋은 방법이 있다. 올해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차례로 들어보는 일이다. 어쩌면 사진보다 더 강력하게 그때의 나의 감정, 그곳의 분위기, 함께 있었던 사람들과의 순간순간을 깨울 것이다. 그게 음악의 힘이니까.
올해 많은 이들의 플레이리스트 속에서 '열(심히)일한' 곡들 중 한 곡을 선정해봤다.
아이유의 '밤편지', 아련한 분위기를 만드는 제목과 가사
지난 4월 발매된 아이유의 정규앨범 <팔레트>의 수록곡들은 아마 올해 많은 리스너들의 플레이리스트 안에서 '소처럼 일한' 곡이 아닐까 싶다. 특히 '밤편지'는 사탕 같기보다는 사골국 같은 곡이어서 여러 번 들을수록 그 맛이 은은하게 우러난다.
반딧불, 파도, 모래, 일기장... 이런 자연친화적(?)이며 클래식한 단어들을 2017년에, 그것도 20대 중반의 가수가 발표한 곡 안에서 발견할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이 곡이 신선한 이유다. 다시 말해, 그런 단어들로 쓰인 노랫말이 품고 있는 '정서'가 참으로 신선하다. 요즘 흔한 정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밤편지'는 트렌드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세련되고 감각적이고 중독성 있는 노래들로 가득한 육지에서 저만치 떨어진 섬 같다. '밤편지'를 듣고 있으면 정말 섬에 있는 기분이 든다. 한적하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마저 느리게 흐를 것만 같은 공간에서 혼자 생각에 잠길 듯하다.
아이유는 노랫말을 잘 쓴다. 전부터 느꼈지만 이 곡의 첫 소절을 듣는 순간 완전히 인정하게 됐다.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보낼게요/ 음,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단 한 소절만으로도 영화를 보듯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고유한 정서가 전해져온다. 시간은 밤, 공간은 아마도 어느 집 창가, 그것도 아주 조용하고 공기 좋은 시골 마을이 분명하다. 반딧불이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반딧불'이란 단어 하나로 노래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아련하고 낭만적으로 변한다.
화자는 시간(밤)과 공간(시골)을 동시에 품은 이 반딧불이를 지금 함께 없는 것으로 추측되는 '당신'에게 보냄으로써 '그날'을 불러온다. 왜냐하면 '그날의 반딧불'이기 때문이다. 이미 가사에 다 담겨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노랫말은 예상대로 '그날'의 기억들에 관한 것이다.
"나 우리의 첫 입맞춤을 떠올려/ 그럼 언제든 눈을 감고/ 음, 가장 먼 곳으로 가요."
'반딧불' 못지않은 신의 한 수는 또 있다. 바로 제목인 '밤편지'라는 단어다. 처음 이 제목을 접했을 때 편지 앞에 '밤'이라는 단어를 붙인 아이디어에 심히 감탄했다. 이토록 예쁜 단어의 탄생이라니! 연애편지, 위문편지, 감사편지, 손편지 같은 단어들은 들어봤어도 밤편지는 처음 들었다. 그리움, 연정 등을 떠올리게 하는 '편지'라는 낱말 앞에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의 낱말을 붙이니 완벽히 고요하고 아련한 정서가 형성됐다. 제목이 곡 전체 분위기의 반 이상을 만들었다.
예스러운데 촌스럽지 않고, 단순한데 계속 듣게 된다. 아이유는 '밤편지'라는 이 한 곡으로 자신의 아티스트적 면모를 유감없이 증명했다. 대중이 따르는 것을 따르기보단 자기의 색깔을 보여줌으로써 그것을 대중이 따르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소박하고 목가적이고 순수한 가사로 만든 노래가 '대중가요'고 '인기가요'라니. 전에 없던 신선함이다.
기사입력 17.12.3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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