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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Oct 11. 2018

'삐삐' 아이유의 정색과 매너  

[가사 깊게 읽기] 아이유 신곡 '삐삐'





이렇게 세련된 정색이라니...
아이유가 가십을 대하는 법





[신곡리뷰] 데뷔 10주년 기념 디지털싱글 '삐삐'에 담긴 그의 속마음




아이유다운 반전이었다. 그가 자신의 SNS에 노란 무선호출기(삐삐)가 큼지막하게 그려진 티저 이미지를 공개했을 때, 신곡 '삐삐'는 복고풍의 노래겠거니 짐작했다. 막상 열어보니 아니었다. 아이유의 '삐삐'는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그 삐삐가 아니라 비상경보기의 삐삐 소리였다.


아이유는 말괄량이 삐삐처럼 대중의 예상을 짓궂게 뒤집으며 얄짤없는 경고성 노래로 돌아왔다. 참 아이유답다고 느껴지는 대목은, 10주년 기념곡이면 으레 팬들에게 바치는 간질간질한 팬송일 법도 한데 그게 아니란 것이다. 아이유는 10년의 연예계 활동에서 자신이 느낀 것을 재치 있으면서도 날카롭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10월 10일 발표한 아이유의 디지털 싱글 '삐삐'를 들어보자. 이 곡은 그가 데뷔 이후 처음 도전한 얼터너티브 알앤비 곡으로, 직접 작사하고 프로듀싱에 참여했다.


'팔레트'의 다음 페이지... 이렇게 세련된 정색이라니



처음 '삐삐'를 들었을 때 아이유의 이전 곡 '팔레트'가 떠올랐다. 전체적으로 키치한 분위기와 개성 있는 리듬, 솔직한 가사 때문이다. 뮤직비디오 스타일도 비슷하다. 그런데 자세히 가사를 들여다보니 '팔레트' 그 다음의 행보 같았다.


'팔레트'가 "나는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이젠 나를 좀 알 것 같아"라며 일기처럼 혼잣말하는 노래라면, '삐삐'는 자신과 주변의 관계에 있어 공간을 무례하게 침범하는 사람들에게 "너 그러면 안 돼"하고 강력하게 주의를 주는 노래다. '팔레트'에서 "날 미워하는 거 알아"란 짧은 가사로 아주 살짝 내비쳤던 속내를 '삐삐'에서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풀어놓은 느낌이다. 할 말을 좀 더 시원하게 하는, 더 당당해진 아이유 같았다.


"It's me 나예요 다를 거 없이

요즘엔 뭔가요 내 가십

탐색하는 불빛

scanner scanner

오늘은 몇 점인가요

jealous jealous"


'삐삐' 가사의 전체를 보면 무례하게 선을 넘어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하는 충고다.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공감할 법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위의 가사처럼 '가십'이란 단어, 그리고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신문들과 텔레비전들을 보고 짐작하건대 이 노래는 아이유가 연예인으로서 느낀 것에 관한 노래이기도 하다.  


To. 인터넷 세상 속 무뢰한들에게


'삐삐' 뮤직비디오 한 장면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사람들로부터 돌멩이를 맞는 사람. 아무 이유도 없이 자신의 공간을 침범받아도 되는 사람. 그래도 되는 사람이란 게 세상에 있을까?


물론 없고, 없어야만 한다. 그런데 어쩌면 있는 것도 같다. '인터넷상의 연예인'이 그런 존재다. '인터넷상'이라는 조건을 붙인 건, 보통 인터넷상에서만 그렇기 때문이다. 키보드 앞에서 온갖 악플을 다는 사람일지라도 당사자인 연예인 앞에서 "진짜 싫다", "너 죽어라" 같은 말을 하지는 못한다. 그 연예인이 진짜 살아 숨쉬는 '사람'이란 걸 인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는지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넷에선 한다. 할 말 못할 말 다 한다. 악플 때문에 심적 고통을 호소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연예인이 여럿 있었지만 그래도 인터넷상의 폭력적 댓글은 여전하다.


지난 10일 가수 홍진영은 자신의 SNS에 찾아와서 "너무 싫어"란 댓글을 단 사람에게 직접 댓글을 남겼다.


"저 미워하지 마세요. 저도 똑같은 사람이랍니다. 슬퍼요ㅠㅠ"


연예인도 "너 싫다"는 말을 들으면 아무리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 해도 시무룩해지고 슬퍼지는 똑같은 사람이란 걸 홍진영의 댓글이 말해준다. 이럴 때 홍진영처럼 자신이 느낀 솔직한 감정을 직접 털어놓는 유형도 있고, 똑같이 욕으로 맞서며 강하게 돌진하는 전사 같은 유형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유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낼 도구인 작품을 통해 아주 따끔하고 재치 있게 꼬집는 유형도 있다. 그런 점에서 '삐삐'는 아이유의 영민함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곡이다.


'삐삐' 뮤직비디오 한 장면


"Yellow C A R D

이 선 넘으면 침범이야 beep

매너는 여기까지

it's ma ma ma mine

Please keep the la la la line

Hello stuP I D

그 선 넘으면 정색이야 beep

Stop it 거리 유지해"


아이유는 옐로우 카드를 꺼내들며 정색한다. 만약 실제 인터넷상에서 아이유가 악플에 정색하고 따끔하게 대구한다면 그게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결국 이러쿵저러쿵 비난받을 것이다. "내 말 틀려 또 나만 나뻐 어"란 '삐삐'의 또다른 가사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잘 해주고 특별대우를 해달란 것도 아니다. "Hi there/ 인사해 호들갑 없이/ 시작해요 서론 없이/ 스킨십은 사양할게요/ back off back off/ 이대로 좋아요/ balance balance"하는 도입부 가사처럼 호들갑 없이 담담하게 관계 맺는 걸 원할 뿐이다. 일상을 떠올려 봐도, 호들갑 떨면서 너무 잘해주는 사람이 오히려 뒤에서 욕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또한 아이유는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규정짓고, 통제하는 걸 멈춰달라는 것뿐이다.


이런 메시지를 아이유는 '삐삐'라는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삐삐' 뮤직비디오 장면 속 삐삐 머리를 한 아이유. '삐삐'란 단어의 여러 활용이 재치 있게 다가온다.



기사입력 18.10.1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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