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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Jan 06. 2019

수수께끼를 맞히면 피카츄 사탕을 드리겠습니다

상상




매거진 < 어른, 안 하겠습니다 >




14. 상상_ 수수께끼를 맞히면 피카츄 사탕을 드리겠습니다




내 친구의 4살짜리 아들 이야기다. 어느 날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아이가 자기 친구에게 수수께끼를 내더란다. 두 엄마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수수께끼 낼 테니깡 맞쵸바~"

"엉!"

"동물이고! 아~주 크고! 발이 네 개고~ 코가 길고~"

"정답!!!"

"코끼리!"

"땡~~~"

(당연히 정답이라고 생각한 엄마들은 땡이란 말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자신도 모르게 수수께끼에 동참하게 됐다.)


"머리에 뿔이 있고, 날개가 달렸어요!"

"용?!" (출제자 엄마 왈)

"유니콘!" (응시자 엄마 왈)

"땡~~~"

(두 아이는 유니콘이 뭔지도 몰랐다고. 세 사람은 도대체 어떤 동물일까 생각하느라 밥상엔 정적이 흘렀고 마침내 4살 아이가 소리쳤다.)


"정답!!!"

"날개 달린 코끼리!"

"딩동댕~~~ 정답이에요~~~~"

(두 아이 표정이 아주 진지했다고 한다. 난센스 퀴즈 그런 거 아니었다고 한다.)


내 친구는 이 일화를 들려주면서 맞춘 그 아이가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엄마 둘이서 서로 감탄의 눈빛을 주고받았다고. 친구는 이런 말도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걔네들의 순수한 생각들에 놀랄 때가 많아. 우리는 순수해질 수가 없잖아. 아는 게 많으니까."


우리는 아는 것이 많고, 대신 상상은 빈곤하다. 두 아이 머릿속에는 있지만 내 머릿속에는 없는 것, 그건 바로 날개 달린 코끼리. 어른이 돼버린 나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머릿속에도 존재하지 않도록 상상의 문을 닫아버리고 산다. 상상이 허용된 어린이들의 세계는 그럼 얼마나 클까, 싶었다.


아는 동생 중에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대학생이 있다. 그 동생의 작품들은 탁월할 뿐 아니라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가 있어서 볼 때마다 놀라곤 한다. 지난해에 동생과 만나서 밥을 먹으면서 내가 물었다. 너는 시를 어떻게 쓰니? 그가 내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사물을 꼭 나의 시선으로, 사람의 시선으로 볼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자기는 글을 쓸 때 물고기의 시선으로 쓸 때도 있고, 거미의 시선으로 쓸 때도 있다고 말했다. 숟가락이 있다면 그것을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그냥 숟가락이겠지만 날파리의 시선으로 본다면 숟가락이 아니라 새로운 사물로 표현될 것이다.


아이들도 그런 방식으로 숟가락을 보지 않을까 싶다.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를 갖고 있는 아이들은 세계를 정해진 무엇으로 못 박는 대신에 무엇이든 상상한다. 그래서 그들의 머릿속에는 무엇이든 존재할 수 있다. 날개 달린 코끼리도. 처음 보는 숟가락이란 사물이 그들에겐 동그란 머리가 달린 빼빼 마른 인형으로 보일 수도 있는 거겠지.


4살짜리 아이들과 시 쓰는 동생을 보면서 내 세계의 빈곤이 보였다. 나는 '정의내림' 없이는 세상을 보지 못하는 어른이 돼버린 걸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상상의 세계를 간직했다면 나도 코끼리 수수께끼를 맞출 수 있었을까.


상상의 세계를 회복한다는 건 세상에 없는 가상의 것을 만들어낸다는 말이 아니었다. 세상의 것들을 보이는 그대로 매번 '새롭게' 보는 것이 상상의 회복이었다. 난 사실 내가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가 않단 걸 근래에 자주 발견하고 좌절했다. 특히 글을 쓰면서 알게 됐는데 진부한 상투어들을 나도 모르게 쓰고 있었다. 가령 "캄캄한 터널 같은 고통을 지나" 하고 뻔한 비유인 '터널'을 고통 앞에다 가져다 쓰는 식이다. 이미 세상 사람들이 습관처럼 쓰는 관용어들을 내 글에 가져다 쓴다는 건 참 부끄러운 일 같다.


나는 날개 달린 코끼리가 사는 그 수수께끼의 세계를 이제 다시 되찾고 싶어졌다.




목차_

01. 프롤로그_ 저는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겠습니다

02. 주체_ 버스에 올라타면 나는 승객이 됩니다

03. 망각_ 내 엉덩이에 무슨 일이 생기든 말든 울다가 웃겠습니다

04. 하루_ 오늘 돌릴 팽이를 절대 내일로 미룰 수 없습니다

05. 가치_ 돌멩이를 주웠는데 소중한 것이라 드릴 수 없습니다

06. 자유_ 오늘 내가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자랑 좀 하겠습니다

07. 사랑_ 용돈은 감사합니다만 종이접기에 쓰겠습니다

08. 고통_ 나는 갑자기 슬픈 기억이 떠올라서 뒤돌아있겠습니다

09. 단순_ 걱정은 지나가던 강아지에게 모두 줘버렸습니다

10. 재미_ 이 놀이는 지겨우니 이제 그만하겠습니다

11. 당당_ 내가 제일 힘도 세고 밥도 많이 먹고, 천재입니다

12. 초월_ 죄책감은 강아지 옆에 있던 길냥이에게 줘버렸습니다

13. 타인_ 나는 용감하니까 내가 다 구해주겠습니다

14. 상상_ 수수께끼를 맞히면 피카츄 사탕을 드리겠습니다

15. 충만_ 혹등고래 앞에서 저는 조금 더 머물다 가겠습니다

16. 에필로그_ 백 투 더 퓨처, 다시 어린이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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