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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May 18. 2019

이렇게라도 저는 웃어야겠습니다  

웃음




매거진 < 어른, 안 하겠습니다 >




20. 웃음_ 이렇게라도 저는 웃어야겠습니다




게시글_ 

전에 스벅에서 주문하려고 기다리는데 직원이 할머니 주문받으며 "다방커피같이 달달하게 프림 넣은 게 좋으신지, 탄밥 누룽지처럼 구수한 게 좋으신지" 묻는 거 보고 배려심과 맞춤형 서비스에 감탄한 기억이 난다.


댓글_ 

할머니: "무슨 소리여. 아아 줘."


- 출처: 인스타그램 '_humorpedia' 


아, 내가 웃음을 잃어버렸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웃을 때다. 밤에 자려고 누워서 인스타그램을 쭉 훑어본다. 그러다가 저런 유머 게시물을 보고는 어둠 속에서 홀로 빵 터진다. '크크크큭 댓글이 더 웃겨. 아이스 아메리카노 큭큭큭' 하며 실컷 웃고 나면 그제야 비로소 깨닫는 것이다. 아... 나 오늘 처음 웃는 거네.


사람을 안 만나면 웃을 일이 없다. 하루 종일 혼자 있는 날은 한 번도 안 웃을 때가 많다. 그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하루를 보내고 나서 자기 직전 알게 됐을 때, 내가 조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려고 누워서 이게 웬 볼품없는 자기연민인가 싶어 헛웃음도 살짝 나온다. 내일은 낮에 한 번 이상 웃어야지, 그런 앙증맞은 다짐을 하고 나서 잠에 든다.


어릴 때는 자기 전 빼고 하루 종일 수시로 웃었다. 병아리 발톱만큼만 웃겨도 웃어댔다. 초등학생 때 피아노 학원을 다녔는데 좁은 연습방에서 한 살 많은 언니랑 이야기하다가 너무 격렬하게 웃은 나머지 옆방 피아노 소리를 다 뚫고 우리 웃음소리가 새어나가는 것 같아서 둘이서 한 손으로는 입을 틀어막고 한 손으로는 배를 잡고 뒹굴었던 게 기억난다. 도대체 언제 적 일인데 아직 그게 기억나는 건지! 한바탕 미친 듯이 웃었던 기억은 근사한 곳을 여행하거나 대학에 합격한 일처럼 내 인생의 잊을 수 없는 날로 남아있었다.


요즘 자주 가는 단골 김밥집이 있다. 거기 직원 아주머니가 두르신 감색 앞치마에는 큰 고딕체로 이렇게 쓰여 있다. 


'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인데.'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옳소'를 외친다. 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인데... 나는 오늘 무엇을 놓쳤을까. 이런 질문도 괜히 던져보면서 허세를 부린다. 김밥 먹으러 와서는. 내가 놓친 것, 혹은 놓치면 안 되는 것들이라... 일단 끼니를 놓쳐선 안 되겠지, 먹고살려고 하는 일인데. 건강을 잃어서도 안 되겠지, 다 건강하게 먹고살려고 하는 일인데.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놓쳐선 안 되겠지, 다 행복하게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리고 한 가지 더. 웃음을 잃어선 안 되겠지, 다 웃고 즐거워하면서 먹고살려고 하는 일인데.


오늘 내가 별로 웃지 않았단 걸 알아채는 날이면 '많이 웃고 행복하자고 하는 일인데' 대체 난 뭐한다고 오늘 웃지도 않고 또 하루를 떠나보냈나 싶다. 밤마다 떠나가는 오늘을 부르며 가지 말라 했지만 웃음기 없는 얼굴로 한 번 돌아보고는 그대로 가버렸다.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느라 몰두한 바람에 오늘은 웃을 틈이 없었노라고 그럴싸한 변명을 해보지만, 나는 안다. 그건 그냥 번지르르한 말인 것이고 어쨌든 내 하루는 웃음이 없었기 때문에 반쯤 죽은 하루였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웃지 않은 하루는 실패라고. 


"인생이 엄숙하면 할수록 웃음은 필요하다." 


- 빅토르 위고


웃음에 목말라 있는 영혼 하나가 여기 있다. 나는 나를 웃게 해 줄, 내가 웃음을 줄 수 있는 코드 맞는 친구들을 늘 찾고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땐 엄지손가락이라도 놀려 인스타그램을 뒤적거린다. 어쩌면 웃음을 찾는 건 나의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배꼽 잡고 크게 터뜨리는 웃음이 아니더라도 일상 위를 흩날리는 자잘한 유머들이 내 삶을 가볍게 해주었다. 그 가벼움이 삶을 견디게 해주었다. 


크고 작은 웃음들은 진지하고 경직된 나를 툭 건드려 힘을 빼게 만들어서 좀 웃고 나면 뭐든 견딜만해지고 뭐든 별 거 아닌 일처럼 여겨지는데, 그 느낌은 여러 번 느껴도 매번 좋다. 아이들이 가벼운 건 자주 웃어서다. 자주 웃는 사람이 어떻게 무거울 수 있을까. 그건 처음부터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힘 좀 빼고 자려고, 낮에 못 웃은 나는 오늘 밤에도 휴대폰을 만지작거릴 것 같다. 이렇게라도 나는 웃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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