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매거진 < 어른, 안 하겠습니다 >
23. 놀이_ 노는 게 나의 일이니 나의 일을 하겠습니다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 복지관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느 날은 어떤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면서 혼잣말을 했다. "에잇, 귀찮아." 그랬더니 갑자기 귀 밝은 남학생 하나가 큰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며 달려왔다. "선생님! 제가 대신해드릴게요! 제가 회원가입하게 해주시면 안 돼요?" 나는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너는 회원가입이 재미있니?"
아이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흥미로운 게임이라도 하듯이 회원가입을 대신해줬다. 또 가입할 거 있으면 자기가 입력해줄 테니 말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나는 세상에 재밌을 게 없어서 회원가입이 재밌을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아직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놀이와 일을 구별하는 기준은 그것을 좋아하느냐 좋아하지 않느냐에 달린 듯하다. 같은 행위라도 어떤 사람은 놀이라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일이라고 여기는데, 이 말은 곧 놀이가 일이 될 수도 있고 일이 놀이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다름없다. 누군가가 커피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면 그 사람에게 커피를 볶고 내리는 모든 과정은 놀이일 것이다. 누군가 영화 보는 일을 끔찍이 싫어한다면 영화관에 가서 앉아 있는 것조차도 피곤한 일이 될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쥬. 잘하는 거 해봤자 일밖에 더 되겠슈."
기업인이자 요리연구가인 백종원이 이런 말을 했는데, 짧은 한 마디지만 혼란 속을 헤매던 나를 결정적으로 도와주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는 사람마다 의견이 갈리는 문제다. 이 선택을 내릴 때 자신이 처한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의 선택은 대략 이러했다. 좋아하는 일만 고집할 수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잘하는 일을 해보려고 해도 돈벌이가 안 되는 일이어서 결국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않는 일을 선택함. 이토록 허무한 결말. 누군가에게 섣불리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라고 말하기조차 조심스럽다. 나도 못 그랬으면서.
인터뷰에서 어떤 젊은 배우에게 데뷔 이후로 가장 감사한 게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감사다. 그게 가장 복이다."
주저 없이 저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게 어찌나 부럽던지. 나도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저렇게 1초도 고민 없이 자신 있게 말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인지 의문의 1패를 당한 기분이었다.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요한 하위징아는 문화 현상의 기원을 '놀이'에 두고 인류 문화를 놀이적 관점에서 고찰했다. 그는 "모든 것이 놀이"라며 "진지함의 세계에서 놀이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인생은 놀이처럼 영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린이에 대해 종종 언급했다.
"어린아이는 실제의 자신과는 다른 어떤 것, 더 아름다운 것, 더 고상한 것, 더 위험스러운 것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making an image) 것이다. 그렇게 하여 아이는 왕자가 되고 아버지가 되고 사악한 마녀가 되고 혹은 호랑이가 된다. 어린아이는 문자 그대로 기쁨에 넘쳐 자기 자신의 밖으로 나가 버린다(beside himself). 너무 황홀하여 그 자신이 왕자, 마녀, 호랑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러는 중에서도 '일상적 현실'에 대한 감각을 유지한다."
- 요한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 중
난 가끔 내가 노는 것에 환장한 사람 같아서 스스로도 놀랄 때가 있다. 몇 월 몇 째 주에 휴가를 쓸 것인지, 휴가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하며 놀 것인지를 진로고민보다 더 진지하게 고민하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렇다고 막상 놀아도 아이처럼 홀가분하고 자유롭게 놀지도 못한다. 내가 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잘' 놀아야 한다, '잘' 쉬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때가 종종 있다. 휴가가 끝날 때쯤이면 '더 잘 놀았어야 했는데', '더 마음 편하게 쉬었어야 했는데' 하고 휴가의 끝자락을 붙잡고서 후회하기도 한다. 놀기 좋아하는 건 아이나 어른이나 다를 게 없나 보다.
아직 학교에 가지 않은 대부분의 어린이에게는 모든 게 놀이지만, 어른에게는 대부분 놀이와 일이 구분돼 있다. 이것이 어린이와 어른의 큰 차이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놀이와 일이 통합된 삶을 사는 어른도 있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는 거의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졌기에 일하는 게 무척이나 즐거운 사람. 그들을 우린 '소수의 축복받은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이 그래서 진리인가 보다. 요한 하위징아의 말처럼 인간 행위의 본질이 놀이라면 인생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일을 놀이처럼 하는 인간이야 말로 인간답게 사는 사람일 것이다.
요한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는 그 자체로 독립되어 있는 것이다. 놀이 개념 그 자체는 진지함보다 더 높은 질서 속에 있다. 왜냐하면 진지함은 놀이를 배제하려고 하는 반면, 놀이는 진지함을 잘 포섭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릎을 치게 하는 통찰이다. 카드놀이를 할 때 사람이 얼마나 진지해지는지를 떠올려보길. 아이들 역시 레고를 쌓고 놀면서 진지한 모습을 보이지만 반대로 애써 진지한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는 것을 뒤로 제쳐 두지는 않는다. 어른들은? 이들은 진지함이라는 하위 세계에 머무느라 더 높은 차원인 놀이의 세계로 선뜻 나아가지 못한다. 심지어 노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기도 하고.
아이들은 논다. 놀면서 성장한다. 그들은 노는 게 목적이고 과정이다. 그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나도 아이처럼 좋아하는 일을 하며 그저 놀고 싶을 뿐이다. 그게 여의치 않을 땐? 좋아하는 무언가가 직업이 되는 축복을 못 가질 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든 좋아하게 만들어서라도! 나는 놀듯이 즐겁게 일하고 말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