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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Jan 04. 2021

10 . 손톱

나는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다. 불안하면 손톱을 물어뜯는다. 올해는 유난히 손톱이 짧아졌다. 나는 보통 머리를 쓸 때 불안정한 기분이 드나보다. 고등학생 내내 손톱이 짧았다. 내가 기억하기로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불안하면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보통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이 있으면 애정결핍이라고 하는데, 나는 내 습관의 시작점을 잘 알아서 그런 해석을 믿지 않는 편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짝이 손톱을 물어뜯었다. 잘근잘근 물어뜯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의아했다. 왜 손톱을 물어뜯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따라해 봤다. 물어뜯진 않았고, 손톱을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봤다. 그렇게 손톱을 얇게 만들었다. 손톱이 얇아지니 휘기 시작했다. 그 느낌이 신기했다. 손톱을 위아래로 꺾어도 아프지 않았다. 그렇게 장난치다 보면 손톱이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몇 달을 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애정결핍이라고 봐야 하나?

솔직히 확신할 순 없다. 중학생 때부터 공부를 할 때 손톱을 물어뜯었다. 엄마한테 항상 잔소리를 들었지만 나도 모르는 새 하고 있었다. 애정결핍인지는 모르겠고, 불안 증세는 맞는 것 같다. 고등학교를 전원 기숙사인 곳으로 갔다. 반 친구들과 24시간을 보냈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같은 교실에서 보내면서 친구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성실한 학생에 속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야자 시간만 보면 우리는 불안증 환자들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손톱을 물어뜯는 애들, 아니면 손톱 옆의 가시를 손으로 뜯어내는 애들, 입술 껍질 벗겨내는 애들, 머리카락 끝을 끊임없이 만지는 애들, 상한 머리를 끊임없이 선별하고 뜯어내는 애들, 정수리를 손으로 만지작만지작 하는 애들까지 멀리서 보면 우리는 환자 집단이었다. 손과 입술에 피를 흘리는 애들도 다수였다. 나는 그나마 피를 흘리지 않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나는 내가 평생 손톱을 기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에 와서 손톱 물어뜯는 습관이 덜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과제를 하거나 시험 공부를 할 때면 물어뜯었다. 그러나 일본에 가서 한 달 동안 지내면서 어쩌면 손톱 물어뜯는 습관이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달 동안 봉사활동 요원으로 활동했다. 몸을 쓰는 고된 일이었다. 우리끼리는 외노자(외국인 노동자)와 다를 바 없다고 자조했다. 아침에 나가서 8시간 동안 바깥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밤에는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한 달만에 한국에 돌아와서 오랜만에 펜을 잡았는데 엄지 손톱이 검지 손가락을 찔렀다. 글씨를 쓰는데 점점 손이 아파왔다. 나는 그때 일본에서 손톱을 물어뜯은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일본에 있을 때 나는 고민할 새 없이 피곤했다. 현실을 떠나 있는 느낌이 들어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편했던 것 같다. 그 결과 손톱이 자란 것이다. 불안증이 내 손톱을 갉아 먹고 있었다.

친구의 친구가 쓴 시를 본 적이 있는데, 제목이 '손톱'이었다. 아마 그랬던 것 같다. 화자는 자신의 손톱을 보면서 안쓰럽다고 말했다. 동시에 부끄럽다고도 말했다. 자신의 짧은 손톱이 불안한 속내를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 나는 원래 시를 읽진 않지만, 이 시는 기억이 난다. 가끔 내 손톱이 내 불안한 본질을 들키게 하는 것만 같아 부끄럽다.


나는 올해 갈수록 짧아지는 손톱을 보면서 내가 나를 갉아 먹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실제로 나는 스스로를 갉아 먹고 있었다. 원래 지문 인식이 잘 안 되는 편인데, 그래도 아이패드 홈버튼 지문 인식은 잘 됐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나는 지문 인식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손톱이 조금만 자라도 갉아먹으니 최근에는 물으뜯을 손톱도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톱 위의 살을 뜯고 있었다. 다행인지(?) 그렇게 아프진 않았다. 피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내 지문을 갉아 먹고 있던 걸까? 지문 인식이 안 된 지 오래다.

지문은 홍채와 함께 그 사람의 유일무이한 정체성을 나타내 주는 신체 부위다. 오랜 불안증이 나의 지문을 갉아 먹었다. 내 정체성을 내가 갉아 먹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손톱을 물어뜯으면서도 나는 멈추지 못한다. 멈추면 다가올 불안을 견딜 수가 없어서일 거다. 하지만 지금 상태가 심각한 편이다. 머리를 감을 때 손이 아파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 이러다 비듬도 생길 판이다. 매니큐어를 발라야겠다. 그러면 그나마 물어뜯지 않는다. 덮는 게 오히려 안전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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