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견뎌야 하는 일에 관하여
나는 대체로 헤어짐을 견뎌내는 입장인데 예상치 못한 순간에 통보받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랑이 변할 수 있냐고 묻고 싶다가도 나는 생각하기를 멈춘다. 왜냐하면 뭐든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 강산이 변하고 사람은 쇠하고 마음은 눈녹듯이 사라진다. 그렇게 과거가 되어버린 일들은 사라진다.
헤어짐을 겪은 뒤 나는 대체로 허탈함을 느낀다. 무엇 하나 그대로인 게 없다는 생각에서다. 과거는 사라진지 오래고 남은 것은 현재뿐이다. 이 생각을 하는 순간에도 현재는 과거가 되고 부서지듯 날아간다. 그렇다고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늘처럼 그리움에 사로잡혀 멍하니 보낸 시간도 사라질 것이다.
과거를 향해 뒤돌아선 내가 계속 뒤로 밀려난다. 내가 밀려난 자리에는 그리움이 남아있다. 그리움은 보고싶어 애타는 마음이다. 이별 뒤의 흔적들은 대체로 잿더미의 형태를 하고 있다. 샘솟아오르는 그리움을 매번 흩뿌리고 나면 그리움을 과거에 둔채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걸까.
또다. 나는 슬픔을 미처 느끼기도 전에 머리를 굴리고 있다. 내가 슬픔을 지연시키고 회피하는 방법이다. 뭐든 변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켜보고 실제로 납득되지만 그래서 당연한 일로 슬퍼할 게 아니라고 되뇌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리움으로 가장한 슬픔을 지나고 있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이 슬픔 또한 지나가리라.
어차피 사라질 슬픔이라면 애초에 없는 게 나았을텐데 나는 무엇을 위해 같은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걸까. 내가 선택한 슬픔이지만, 그래서 전부 내 탓이지만, 그래도 나는 허탈하다. 허탈함은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나는 내게 주어진 헤어짐을 내탓으로 여기며 혼자 해결해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아, 그래서 허탈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