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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Jan 06. 2021

17. 정체성(2)

내가 자꾸 변해간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中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 중 하나다. 카톡 상태메세지로도 자주 등장한다. 너무 유명해서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 살짝 비틀어 본다. 아름다운 시구를 우리의 지독한 현실로 가져와 보자. 현실에서 우리는 실수를 한다. 만약 내가 실수로 그의 이름을 잘못 불렀는데, 내가 실수를 정정하기도 전에 그가 나에게 와서 꽃이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내가 그의 이름을 잘못 불러 주었는데도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너 누구니? 내가 알던 사람 아닌 거 같아.)


이전 글에서 내 정체성을 구성하는 세상의 시선들을 이야기했다. 시선들이 n 개라고 가정할 때, 내가 보는 나의 정체성은 그중에 하나인 1/n 조각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 그러니까 (n-1)/n이 내겐 더 중요해진다. 바깥의 시선이 내 정체성을 정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다. 그래서 나의 정체성을 구성해주는 상대방의 목소리에 우리는 반응했던 것이다. 여기까지가 나의 입장이다. 이제는 정체성을 이루는 우리의 관계 속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보자.


상대방은 나를 어른스러운 사람으로 알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상대는 나의 어른스러움에 반한 사람이다. 나는 이에 응해 항상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 상대방이 장난이 치고 싶어 졌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 본다. "근데 넌 가끔 어린애 같아." 나는 나의 어른스러움을 잘 알지만 동시에 어린아이 같은 면모도 있다고 평소에 생각해온 터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반응한다. "나 알고 보면 굉장히 유치해." (극단적인 상황임을 미리 말해둔다.) 이후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가끔 아이 같이 칭얼거리는 모습을 상대방에게 보여준다. 상대방이 나를 그렇게 봐주었기에. 상대방이 약속에 늦은 날 나는 괜히 어린애처럼 투정을 부렸다. 장난이었는데 상대방이 정색을 하고 나온다. "나는 너를 모르겠어. 어른스러운 게 좋아서 만난 건데, 이렇게 유치한 사람인 줄 몰랐어. 오늘 바빠서 늦을 수도 있다고 했잖아. 그걸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워? 내가 너를 잘못 안 거 같아. 헤어지자, 우리." 아, 황당하도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정체성>은 이와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를 다룬다. (나이 많은) 여자 주인공 샹탈은 해변을 걷다가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 더 이상 "남자들은 결코 그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샹탈이 한국에서 '아줌마'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공포를 느꼈다고 생각한다. 아줌마, 이 단어는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억척스러움만 남은 어떤 투박한 여인을 떠올리게 한다. 내게 이런 단어가 붙다니! 좋아할 여성은 없을 것이다. 그날 샹탈은 슬픔에 젖은 눈으로 연하의 연인 장 마르크에게 말한다. "남자들이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않더라."


장 마르크는 샹탈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시라노라는 이름으로 샹탈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기분 좋게 해주려고 한 장난스러운 선물이었는데, 이걸 받은 샹탈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샹탈은 낯선 남자의 숭배의 편지에 설렘을 느끼고 있다. 모를 수가 없다. 샹탈이 낯선 남자의 시선에, 목소리에 응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 마르크 입장에서는 너무도 낯선 모습이다. 내가 알던 그 샹탈이 맞는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볼까. 한 번은 이런 편지를 받는다. "당신은 존재하기 위해서는 춤을 추고 위로 솟구쳐야만 하는 불꽃을 닮았습니다. (......) 당신을 생각하며 나는 당신 알몸 위에 불꽃으로 엮는 외투를 던졌습니다. 당신의 하얀 육체를 추기경의 주홍색 외투로 가렸습니다. 이렇게 가리운 당신 몸, 빨간 방, 빨간  침대, 빨간 추기경 외투, 그리고 당신, 아름다운 빨간 당신이 눈에 선합니다!" 며칠 후 샹탈은 빨간 잠옷을 산다. 그날 밤 샹탈은 그 멋진 빨간 잠옷을 입고 샹마르크를 유혹한다. 편지의 감미로운 말을 온몸에 두른 채다.


(개인적으로) 샹탈을 너무 이상한 여자로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샹탈은 그가 불러준 이름에 꽃이 될 수밖에 없는, 1/n 정체성이란 한계의 이치를, 순례자의 마음으로 따라간 것에 불과하다. 자신이 원하는 정체성을 부르는 다른 목소리에 어떻게 반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사소하던 1/n이 2/n로 강력해지는 기회를 어떻게 놓칠 수 있을까. 문제가 있다면, 그 이름이 샹마르크가 던진 농담이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로 인해 샹마르크는 샹탈의 정체에 의문을 던진다. 내가 사랑하던 그 여인이 맞나 하고.




나는 내 정체성이 상대방의 말에 반응했던 순간들을 알고 있다. 나조차도 모르고 있던 모습도 있었다. 나는 아기를 별로 안 좋아했다. 무관심했다. 아기가 도대체 왜 귀여운 거야?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조카 사진을 보여줬다. 아기치고도 귀엽지 않은 아기였다. 나는 항상 그래 왔듯이, 왜냐하면 아기에 대한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배려가 필요하니까, 아기가 너무 귀엽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안심한 듯 나를 쳐다봤다. 자기는 아기가 너무 좋다고 했다. 이후로도 아기를 좋아하는 척해야 했다. 그리고 계속 좋아하는 척하다가 어느 순간 진짜 좋아졌다. 아기를 진짜로 귀여워하게 된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만날수록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나 자신을 목격해왔다. 치즈를 싫어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친구들은 치즈에 환장해 있었다. 나중에는 치즈를 공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다. 나는 자꾸 치즈를 권하는 친구들을 못 이기고 한 번씩 치즈를 입에 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치즈가 맛있어졌다. 치즈를 짜 먹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면 황당하기도 했다.(그래서 그때 살이 쪘을 거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그렇다. 스무 살 때 좋아하던 선배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먹었다. 깔끔해서 좋다고 했다. 나도 (미각을 잃은 사람처럼) 깔끔해서 좋은 척을 했다. 그러다 진짜로 깔끔해서 좋아졌다. 지금은 하루에 최소 2잔 이상은 먹는다.


정체성, 그것은 혼란스러움 그 자체다. 나도 모르고, 상대방도 모르고, 나도 놀라고, 상대방도 놀라고, 그러다 이전에 나였던 본연의 내가 사라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렇다. 나는 가벼운 예시들을 들었지만, 너그러웠던 내가 옹졸한 사람으로 변한 모습을 보면, 과거의 내가 그리워 힘들어질 것을 안다.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며 슬퍼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보기로 했다. 모든 것을 가볍게, 스쳐가듯이. 나는 착했다, 나빴다, 친절했다, 사나워졌다, 예뻤다, 못생겼다, 사랑스러웠다, 엄격해졌다, 어른스러웠다, 아이같았다, 우스워졌다, 근엄해졌다, 하는 그런 사람인 걸로 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너도 그런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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