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속 '알까기' 신화를 까본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타인에게 착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면서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해석하기론 세상의 '도덕률'에 맞춰 나가기 위해 자신을 억압하는 것이 착한 아이 콤플렉스다. 그렇다면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정말 나와 상관 없는 단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착한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3살 어린 동생이 태어나고부터 나는 내가 '나쁜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던 것 같다.
어린시절의 기억은 믿을 게 못 된다. 나의 감각으로 기억하고 있는 순간은 8살 이후부터다. 그래도 8살 이전의 기억이 부분부분 남아있다. 정신적 충격이 컸던 순간들이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대부분 내가 나빴던 기억이다.
동생 이마에는 파인 자국이 남아있다. 내가 4-5살이었을 때로 생각된다. 동생이 이제 막 걷기 시작했을 때였으니까. 우리집에 에일리언 뒤통수를 닮은 컴퓨터가 생긴 날을 기억한다. 나는 할 줄 모르면서도 자판을 마구 두드려댔다. 그냥 신기했다. 컴퓨터 책상 옆에는 침대가 있었다. 동생은 침대를 타고 올라와서 자기도 만져보겠다며 내게 덤벼들었다. 나는 당연히 동생을 밀쳤다. 안타깝게도 나는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있었다. 동생이 밀리는 대신 내 가 앉아 있던 의자가 밀렸다. 거기에 기대있던 동생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머리로 수직낙하했다. 동생은 아파서 울기 시작했고, 나는 당황했다. 엄마에게 심하게 혼났던 기억이 난다.(엄마는 그때부터 나보고 못됐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이후로도 나는 나쁜 누나였다. 스스로도 정말 잔인하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 어렸을 때는 동생과 장난치다가도 항상 싸움으로 이야기의 막을 내렸다. 그날도 동생 때문에 기분이 나빠졌는지 나는 동생을 때렸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죄책감이 없었다.) 동생은 평소처럼 (굳이) 큰소리로 울었다. 엄마가 들어달라는 듯이. 나는 엄마가 달려올 것을 알았기에 급하게 동생을 때려 눕혔다. 동생은 더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다급했던 것 같다. 동생의 입을 급히 손으로 막았다. 입을 꾹 눌러 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했다. "누나가 때린 거 미안해. 그러니까 그만 울어." 이렇게 속삭이듯 속사포로 말했던 것 같다. 그 순간 내 시선이 내 몸을 빠져나갔다. 나는 카메라가 공중에서 내려다보듯이 나를 볼 수 있었다. 때리는 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때리는 게 잘못된 걸 알면서도, 혼나지 않기 위해 동생의 입을 막는 모습이라니, 내가 이리도 치졸했던가. 이런 감정이 심장을 스쳤다. 동생은 숨을 못 쉬겠다며 힘겹게 내 손을 떼어냈다. 나는 죄책감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동생은 그대로 엄마에게 갔다. 평소처럼 혼났지만, 평소보다 더 잘못한 느낌이 들어 힘들었다.
그렇다. 나는 항상 착한 아이 콤플렉스의 정반대편에 있었다.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굳이 착하게 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학문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사회화가 더딘 아이였다. 유치원을 다닐 때 친구가 없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2학년 때까지는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 나는 사회와 부딪히고 있었지만, 굳이 마주할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 같다. 내 세계는 타인의 세계가 침범해 오기 힘들 정도로 폐쇄적이고 견고했다. 그래서 나의 세계가 바깥의 세상보다 우선이었다. 나쁜짓을 해도 죄책감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내 세계에서는 그냥 가능한 일이니까. 스스로 용인되는 일이니까.(이렇게 말하고 보니, 정말 사회 부적응자였던 것 같다.) 그래서 학창시절 도덕이 가장 어려웠더랬다. 아니, 친구가 사과하면 받아줘야 하는 건가? 내 마음은 풀리지도 않았는데? 공부를 열심히 하던 중학생 때는 도덕책을 암기하기 위해 교과서를 2번이나 필사했다. 도덕! 그것은 투쟁의 대상이었다.
도덕책은 말한다. 친구를 배려하라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동생을 때려선 안 된다고. 보통 어린아이들은 도덕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내가 마주한 세상을 전부라고 받아들이며 그대로 흡수한다. 그리고 그 세상의 규칙을 진리로 여긴다. 문제는 어른이 되어서다. 세상은 도덕책 같이 흘러가지 않는다. 가장 친한 친구를 질투하고, 배신하기도 하며, 부모님에게 다투다 심한 말을 내뱉는다.(아, 학창시절 우리는 도덕책 앞에 붙인 효도 리스트에 사인을 받기 위해 얼마나 애썼던가!) 어른이 되는 과정은 그래서 힘들다. 그동안 배워 왔던 세상의 진리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의 견고한 세상이 무너지는 일은 견디기 어렵다.
이러한 현상을 평생동안 천착한 작가로 헤르만 헤세가 있다. 그래서 세상의 이치를 꿰뚫고 있는 한국의 현자들은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에 항상 소설 <데미안>을 넣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데미안>을 처음 읽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항상 그렇듯 한 장 빼곡히 독후감을 완성했다. 대학생이 되고 책을 다시 읽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데미안>은 어린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이 아니라는 감상문만 남겼다. 내가 봤을 때, 아직까지도 <데미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어른들이 많다. 그 유명한 '알까기' 설화만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사람들은 알에서 까고 나오는 투쟁은 공감하고 기억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아브락사스'라는 신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열심히 알을 깨고 나온 뒤 어리둥절해 한다. (뭐지?) 내가 깨고 나온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깨고 나왔는가? 어리둥절함은 우리를 다시 알 속으로 가둔다. 다시 어린시절 입력한 '도덕률'을 깨지 못하고, 그곳에 갇혀 죄책감을 낀다.
아브락사스, 그는 '선'인 동시에 '악'이다. 선과 악이 뒤섞여 있는 존재다. 즉, 우리의 현실이다. 태초는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혼란스러움 속에 탄생한 인간은 혼란스러움에 당황해 질서를 만들었다. 다름 아닌, '도덕률'이다. 인간이 종교를 만들고, 천 년 넘게 종교를 유지해 올 수 있던 이유와도 상관있다. '부모에게 효도하여라', '도둑질을 하지 마라', '거짓말을 하지 마라',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등을 웅장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십계명이 대표적이다. <데미안> 속 싱클레어는 십계명에 어긋나는 현실을 마주한 혼란스러운 우리들 모습 그 자체다. 시작은 어린시절 어쩌다 한 거짓말이었다.
나도 어린시절 부모님께 거짓말을 한 뒤 안절부절 못하던 때가 있었더랬다. 특히 아빠는 짬에서 나오는 날카로움으로 나의 거짓말을 눈치 채곤 했다.(감히 날 속여?) 그러면 거짓말은 진짜로 하면 안 되는 거구나 하고 배우기도 했다. 그러다 아빠가 거짓말이 들통나서 뒤통수를 벅벅 긁는 순간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거짓말은 해서는 안 되는 거지만, 할 수도 있는 거라고 우리는 배운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알을 깨고 나와 혼란스러운 세상을 오롯이 마주하는 것, 그것이 '아브락사스'라는 신이다.
현대에 와서 아브락사스는 약간은 흔해 빠진 진리가 됐다. 요즘 유행하는 에세이들을 보면, 결국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라는 내용이다. 세상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며, 내가 착한 사람이 아니라 옹졸하고 조잡스러운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내용이다. 이러한 에세이들이 유행하는 이유는 아브락사스에게 닿는 것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2018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뻔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모두가 그만큼 공감하기도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를 흔들었나보다. 내가 봤을 때 작가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는 어려서부터 배운 도덕률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남을 질투하고 있는 자신을 미워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할 수 있는 건데도, 미워하는 마음을 내것으로 품지 못해 마음 고생하고 있었다.
어쩌다 친해진 친구가 생각났다. 아주 착하고 순진무구한 친구였다. 첫 인상은 참 밝았다.(그래서 부담스러웠다.) 친해지고 나서 친구는 내가 너무 솔직한 게 신기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속마음을 털어놨는데, (미안하지만) 고민거리도 아니었다. 친구는 나쁜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나쁜 생각을 때때로 한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게 뭐라고. 나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다 그래. 안 그런 게 이상한 거야. 난 맨날 그래."
나는 맨날 그렇다. 뭐든 마음대로다. 길을 가다가 전단지를 나눠주는 할머니들을 보면 친절하게 전단지를 받아준다. 친절한 마음가짐으로 지하철을 타러 갔다가 퇴근시간대라는 사실을 알면 열기와 함께 짜증이 올라온다. 빽빽한 지하철에서 내리기 위해 나를 마구잡이로 밀치면서 무표정한 표정을 짓는 사람을 보면 나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일부러 쫓아가 신발 뒤축을 밟은 적도 있었다. 아니면 어깨를 역동적으로 휘적여 '이웃을 사랑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아니, 많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한 심술을 부린 적도 많았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일들이 많아 여기선 생략한다.) 면접에서는 다른 사람을 짓밟기 위해 어찌나 부단히도 애썼던지 (떨어진 건 분하지만) 사람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들었다. 그러면 내가 너무 별로였던 것 같아서 후회하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살 가치가 없다고 느꼈던 적도 많았다. 이러면 죽는 게 맞을까?
30대 초반의 헤르만 헤세는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젊은 시절 쓴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에서>는 <데미안>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다룬다. 책으로 배운 선한 세상이 실제가 아님을 보게 된 주인공은 방황한다. 모범생이었기에 그 자괴감이 더 크다. 그리고 방황하면서도 방황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찐모범생이다.) 이야기는 방황하던 주인공이 술에 취해 길거리에서 얼어 죽는 것으로 끝난다. 방황 끝의 죽음이 당시 작가가 내린 결론이었을까? 나의 악을 마주하는 것이 죽을 만큼 힘들다는 뜻이었을까? 확실한 건 작가가 불혹을 넘기고 쓴 <데미안>에서는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싱클레어 옆에는 우리의 '데미안'이 있다. 데미안은 끊임없이 말한다. 괜찮다고. '알까기' 신화를 창조한 헤세는 불혹을 넘기고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괜찮아. 원래 그래.'
여기서 <데미안>을 떠들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아직까지 나한테는 <수레바퀴 아래에서>가 더 잘 읽히고 공감이 간다. 이게 더 솔직하고 치열하고 젊다. <데미안>은 '데미안'처럼 세상을 혼자 다 산 현자 느낌이 나서, 내가 봤을 때는, 어린이들이 읽기엔 부적합한 책이다. <데미안> 독후감 때문에 들어온 어린이들은 실망을 감추지 말고 나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