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말한다
"신은 죽었다."
여기서 신은 인류의 삶을 지탱하던 믿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삶이 힘들어질 때마다 신을 찾았다. 인간이 신을 찾는 한 신은 죽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질문해 본다. "21세기 인류는 더 이상 신을 찾지 않는가?"
내 기억으로 나는 꽤 자주 찾았다. 나는 성당 유치원을 다니면서 어렸을 때부터 일요일 미사를 다녔다. 미사 중에는 신에게 소원도 빌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빌듯이 엄마가 내가 원하는 것을 사주도록 마음 먹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때때로 동생이 얄미울 때는 동생에게 벌을 달라고 빌었다. 한번도 소원을 들어준 적은 없었다. 신부님께는 고해성사도 했다. 동생에게 얼마나 못 되게 굴었는지를 설명하고 용서를 구했다.
나는 제사 때도 조상님들께 빌었다. 중학교 때는 외고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고, 고등학교 때는 서울대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조상님은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잔인하십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다이어트에 열중하고 있었기에 살이 빠지게 해달라고 빌었다. 마찬가지로 조상님들은 나를 외면하셨다. 작년에는 취업해 달라고 빌었다. 또 외면하셨다. 나는 자꾸 거절당하면서도 신을 찾았다.
한동안 북한 관련 유튜브를 탐독했다. 주성하 동아일보 북한전문기자가 운영하는 '주성하TV'를 열심히 봤다. (2003년에 남한에 들어오긴했지만) 내가 느끼기에 북한식 유우머인 것들이 섞여 있어서 재밌었다. 주성하 기자는 가끔 탈북할 때 얘기를 들려줬는데, 두만강을 건널 때의 에피소드가 인상깊었다. 주성하 기자는 생사가 오고가는 가운데 북한에서는 배운 적도, 배울 수도 없는 신을 찾았다고 한다. "신이시여, 제발 무사히 탈출할 수 있게 해주세요!"
우리는 절박할 때 신을 찾는다. 나는 동생이 수능 보던 해의 엄마를 기억한다. 부처님 오신 날에 엄마는 나를 데리고 절을 갔다. 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연등 쪽을 가리키며 동생 수능 잘 보게 해달라고 5만원 내고 등을 달았다고 했다. 나는 비빔밥을 먹으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엄마는 미신 같은 건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주나 타로에 관심이 많은 나와는 달랐다. 진정 간절함은 신을 찾게 만드는 것일까? 그해 엄마와 나는 동생을 수능장에 데려다주고 아침밥을 먹기 전에 성당에 갔다. 엄마는 또 기도를 했다. 부처님과 하느님을 동시에 찾은 탓이었을까? 동생은 수능을 망치고 재수를 했다. 내가 이 사실을 엄마에게 지적하자 이후로 엄마는 동생이 삼수할 때까지도 신을 찾지 않았다. 대신 수험생한테 좋은 음식을 인터넷에 검색했다.
무신론자들은 비이성적 존재인 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며 신을 믿는 사람들을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믿음도 사라졌다는 말도 비웃을까? 나는 많은 것들을 믿지 않는 편이지만, '믿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믿는다. 내가 봤을 때, 사람은 믿음 없이는 살 수 없다. 당장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라. 그는 (언젠가) 죽을 것이다. 믿을 수 있는가? 믿는다면 너무 슬퍼서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믿으려고 한다. 내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은 죽지 않을 거라고. 믿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신은 죽지 않았다. 다만, 신은 형태를 바꿨다. 어디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신은 과학으로 옮겨갔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공감한다. 생물학의 발전은 인류에게 죽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 신이 웅장한 힘을 갖고 있을 때 인류는 죽어가는 사람 옆에서 기도했다. 그러나 신이 힘을 잃은 지금 우리는 의사에게 가서 빈다. 제발 살려 달라고. 그리고 기술의 발전은 인류에게 지성의 힘을 안겨줬다. 원시시대에 길을 가다가 천둥이 치면 (멈추게 해달라고) 신을 찾았다. 그러나 나는 저번에 길을 가다 천둥이 크게 쳤을 때 구글에 검색했다. '천둥이 치는 이유.' 알려주십시오, 구글 신이시여!
나는 사실 그 어떤 신보다 구글 신을 자주 찾는 편이다. 다이어트를 할 때도 조상님에겐 1년에 2번만 빌었지만, 구글 신에게는 매일같이 빌었다. 그리고 방법을 물어봤다. '한 달 안에 10kg 빼는 법' 아,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여행을 하다가 길을 잃었을 때도 구글 신을 찾았다. 어린양에게 길을 알려주십시오.(베니스에서는 벽을 뚫고 가라는 과감한 지침을 내리셨지만, 어쨌든 내가 아는 신 중에서는 가장 도움이 되는 신이었다.) 면접을 보고 와서도 구글 신을 찾았다. '면접 합격 신호' 아, 제가 합격할 수 있는 게 맞습니까. 정확한 정보는 아니었지만, 면접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위로를 얻었다. 나의 가장 친밀한 신!
그런데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나는 신들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그 신은 당신들이었다. 나는 때때로 위로를 얻고 싶어, '우울할 때 위로' 같은 걸 찾아봤다. 브런치가 생긴 다음부터는 구글을 통해 브런치 글을 자주 접했다. 가끔 좋은 글을 마주치면 위로를 얻었다. 그 사람은 내게 있어 '위로의 신'이었다. 때때로 글을 쓰다 막히면 '글 잘쓰는 법'도 검색했다. 그러면 '글쓰기의 신'이 나타나 내게 지침을 주셨다. 이 외에도 '연애의 신', '취업의 신', '영화의 신' 등을 만났었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유입키워드'의 존재를 알게 됐다. 사람들이 어떤 키워드를 통해 내 브런치로 들어왔는지가 나온다. 나는 어떤 종류의 신인가 하고 유입키워드를 살펴본 적이 있다. 흥미로운 것 몇 개만 말해보고자 한다. '욕 안 하는 방법', '삶은계란 시간', '개똥 밟고 현관', '항문 병원' 등이 있었다. 이에 따르면 나는 '개똥의 신'이며 '항문의 신'이고 '삶은 계란의 신'이면서 '욕 안 하는 신'이다. 뭔가 냄새 나는 신이다.
아무튼 우리는 신이다. 우리의 믿음이 끝나지 않는 이상, 우리가 생각을 멈추지 않는 이상, 걱정하길 그만두지 않는 이상, 신은 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죽지 않는 이상 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그 신이기에. 그래서 물어본다. 당신들은 어떤 신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