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당 Oct 20. 2023

할아버지의 경제원리



 우리 동네는 평야지대고 농사 거리가 어느 정도 있어 산골짜기 다른 촌락보다 어렵게 살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유한 삶을 살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제 복은 제가 갖고 태어난다’ 하여 자식을 여럿 낳고도 걱정하지 않았던, 문명이 열리지 않았던 그 시절 가난의 척도(尺度)는 지금과 달랐다. 살림이 넉넉하여 옷을 번지르르하게 입고 외제 차를 굴리며 세계 일주를 하고, 그러고도 남으면 닥치는 대로 땅이나 건물을 사들이는 게 요즘의 부자라면,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을 만큼 두둑하게 볏가리 싸놓고 토광에 고구마나 감자 재워놓고 겨울을 날 수 있으면 부자였다.  

 우리 집은 땅보다 소가 많은 집이었다. 집안에 외양간만 있어도 든든하던 그 시절에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의 소로 넘쳐났다. 할아버지는 소를 먹이다 힘이 들면 동네 사람들은 물론 이웃 동네까지 '어우리 소'를 주셨다. 일명 '도지 소'를 준다 하는데, 이는 주인집에서 어린 송아지를 가져가 정성으로 보살피고 공을 들여 송아지를 낳으면, 기른 사람은 송아지를 갖고 주인집에는 어미가 된 소를 돌려준다.

 요즘 같이 참외나 수박, 복숭아나 사과 농사가 흔하지 않았고 마땅한 벌이가 없었던 그 시절엔 어우리 소가 부업으로는 최고였다. 그러니 송아지 낳을 때가 되거나 낳았다는 얘기가 들리면 우리 집엔 사람들로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뤘다. 운이 좋아 어우리 소를 차지한 사람 얼굴엔 웃음꽃이 피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아쉬운 발걸음을 떼어놓아야 했다. 이래저래 어우리 소를 내놓는 날은 언제나 사람들이 들끓었는데 어린 내 손에도 눈깔사탕이 쥐이어졌다. 커서 생각해 보니 그들이 왜 그랬나,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많은 소를 기를 수 있었던 것은 남들보다 몇 배 부지런한 근성이 있으셨기에 가능했다. 음성장은 집에서 50여 리가 되는 먼 길이고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는 동이 트기 전 캄캄한 새벽부터 움직여 두 번씩 장을 보신 적도 많으셨다고 어머니는 회고하셨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렇게 재산을 불려 가면서도 땅에는 집착을 보이지 않으셨다. 소 몇 마리 내다 팔면 눈에 보이는 땅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내 손으로 농사지을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힘에 부치는 땅은 사들이지 않으셨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지 않고 부칠 수 있는 땅에서 소박하게 인생을 사셨던 것이다.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해가 질 때까지 달려 땅을 차지하려는 농부 ‘파흠’이 아니었다.

 그에 비해 지금 사람들은 욕심이 하늘 같아 부치기 힘들어도 눈에 보이는 땅은 다 사들인다. 아흔아홉 섬 가진 사람이 한 마지기 논을 빼앗으려고 밤잠을 설치고 머리 굴려 꼼수를 둔다. 놓인 위치에서 먹을 만큼만 소유하고 나머지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나누고 살면 좋으련만 배가 부른데도 욕심만 키운다. 미물(微物)들의 아둔한 생각과 가녀린 손놀림은 결국 사회를 병들게 하고 살맛 나지 않는 세상으로 변해가는 데도.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한 끝없는 욕심. 온갖 잡음과 소음으로 인해 차가운 냉기만 느껴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TV채널을 열거나 신문 보기가 두렵고 죄가 없어도 사람들은 죄진 것 마냥 똑바로 걷지 못한다. 험난한 파도에 놓인 돛단배 같은 현실에서 내배 부르면 남 배곯아 죽거나 말거나 상관 않는다.

 냉소주의(冷笑主義)와 몰(沒) 인간적인 이기주의가 판치고 물질 만능주의와 배금사상(拜金思想)에 젖어 사는 현대인들의 엉뚱한 욕심은 사회적으로 큰 부작용과 걱정거리를 불러왔다. 경제 정책 부재와 상(商) 도덕의 타락으로 기업은 연실 도탄에 빠지고 개인들은 신용카드를 남발하여 파산 신고를 하고 있다. 힘에 버거워 버티질 못하면 둘도 없는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리기도 한다.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는 것일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그릇된 욕망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미련을 버리고 불빛 없는 산골로 되돌아간 사람들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 배가 고파도 찬밥 한 덩어리와 고추 한 알에 웃음 짓던 옛날이 그리워진다.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었어도 가질 것만 가지셨던 할아버지의 경제 원리. 그러나 그 결과는 놀랍지 않았던가. 하나를 투자하고도 그 이상을 얻으셨으니.

 땅 냄새 맡으며 마차를 달리던 할아버지 손에 쥐어진 채찍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이전 23화 대추나무와 아버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