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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당 Sep 25. 2023

대추나무와 아버지

수필에 날개를 달다

  

  뜰 안의 대추나무가 예년 같지 않다. 잎을 내줄 시기가 아닌데 산들바람에 힘겨워하고 열매마저 푸르스름하다. 대추 한 알을 따 맛을 봐도 속이 흐물흐물하고 비릿하기만 하다.

 나무에 병이라도 든 걸까? 올해는 일기가 고르고 태풍도 없었다. 앞밭에 있는 것은 열매가 실해 가을빛을 담쏙 안겨주고 있는 걸 보면 해거리 증세도 아닌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집히는 데가 있다. 얼마 전에 사랑채를 헐어내고 마당 구석구석까지 시멘트 포장을 했다. 집안 곳곳이 깨끗해져서 좋았지만 대추나무에 물줄기를 끊는 셈이었다.

  난(蘭)을 키우면서 안 사실이지만 물 분무를 뜸하게 하거나, 한낮 뜨거운 창가에 난을 내버려 두고 주말을 보내고 나면 잎사귀가 금세 노래진다. 난은 손수 자신의 몸을 태워 생명을 유지하느라 잎사귀 끝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증세를 보인다. 그렇듯 벼락을 맞아도 견디는 옹골찬 대추나무라도 그 주변을 온통 시멘트로 포장했으니 목마른 태양의 계절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밭은기침을 하며 고통을 호소하는 아버지를 차마 볼 수 없어 병실 밖으로 나왔다. 애타는 절규가 병원 복도 끝까지 새 나왔다. 아버지가 처음 병원에 올 때에는 밥 한 그릇도 거뜬히 비웠는데 시간이 갈수록 미움은커녕 물 한 모금조차 넘기지 못한다. 입을 벌릴 기력조차 없어 물을 수저로 떠 넣어 드려야 한다. 거칠기가 덜한 요구르트조차 한 숟가락 넘기면 좋으련만 손을 절레절레 내젓는다. 아버지의 몸은 야월대로 야위어 날이 갈수록 대추나무를 닮아간다. 아버지의 몸에서 수분이 빠져나간다는 증거다.

  앞마당을 깨끗이 하고 화단을 정비한다는 명목 아래 마당에 시멘트를 부은 것이 대추나무를 시들게 했듯이 독성이 강한 병균은 아버지의 몸에 있는 물기를 빼앗아 갔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는 물 없이 목숨을 이어가지 못한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하다못해 식물일지라도 물 공급을 차단하면 어느 것도 살아남지 못한다. 공기처럼 가볍고 흔한 게 물이라지만 생명의 갈림길에선 물이 그 어느 것보다도 소중하다. 명약보다 효험이 있다. 몸에서 물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건 생명을 내주는 일이다.  

  물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명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물에 전하면 물의 결정(結晶)이 선명하고 예쁜 육각형을 이룬다. 그와는 반대로 욕설과 꾸지람을 하면 그 결정이 무참히 깨져버린다. 물에 그와 같은 글씨를 써 보여주거나 음악을 들려주어도 반응은 유사하다. 사람의 몸속을 타고 흐르는 수분의 결정(結晶)도 일그러지지 말아야 한다. 각이 선명한 사랑의 결정체가 전신에 흘러야 한다.

  할아버지는 큰아들을 잃은 절망감에 아버지를 대학도 졸업하기 전인 이른 나이에 장가를 보냈다.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배필을 맞아들인 아버지는 색시가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성화를 부렸다고 했다. 동생들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모를 정도로 웃음기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아버지는 농부의 자식이지만 교단에 섰고 공교롭게도 밭에서 일만 하는 어머니를 만났다.

  아버지의 몸은 이른 나이부터 탁류가 흐른 셈이다. 아름다운 몸으로 호흡해도 모자랄 판에 일그러진 물의 결정을 지니고 평생을 산 것이다. 물마저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데 두 분의 사이가 그리 서먹서먹했으니 사랑의 결정체가 반듯할 리 없다.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어야 하는데 흙탕물을 걸러내지 못했으니 두 분의 삶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버지의 손을 잡아 본다. 온기가 전해오지 않는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계곡은 아버지의 모습을 빼닮았다. 굽이굽이 패인 골짜기는 오래도록 논과 밭을 휘돌아 치던 아버지의 나이테다. 거북등처럼 변한 산 구릉은 거칠고 거칠어진 아버지의 손등이다. 그토록 자식들에게 감추고 싶어 했던 아버지의 그늘이다.

  아버지의 몸에서 점점 물기가 빠져나간다. 물기를 받아들여도 시원찮은 판에 내주기만 한다. 그런데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아버지가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느라 성을 쌓고 물을 가두는 동안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아버지는 나와 마지막 밤을 보내면서도 대추나무처럼 속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참아내며 미안하다고만 했다. 아버지께 안겨드린 건 빈 껍데기뿐인데 뭐가 그리 미안했던가. 뭐가 미안하고, 왜 미안하냐고 해도 그저, 그냥 미안하다고…….

  차례상을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대추와 밤이며 과일을 차리고 나물류를 올린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이며 적과 송편을 진설한다. 한쪽에선 제주를 준비하고 지방을 모신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다. 빈방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잔을 올려드리는 손이 나도 모르게 떨린다.

  마당으로 나와 대추나무를 올려다본다. 나무를 심은 지 어언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그 기세가 안타깝다. 아버지가 들에 나가거나 힘든 일로 괴로워할 때마다 마주 했었는데 차례가 끝나고 나면 대추나무에 술이라도 한 잔 부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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