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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당 Sep 26. 2023

어디까지 가는 걸까

  날씨가 흐리고 하늘까지 어두우니 마음마저 가라앉습니다. 편안할 것 같은 일요일 아침! 그러나 몸은 반대로 움직여갑니다. 출근하지 않을 때는 게을러져 머리도 안 감고 세수도 하지 않다 보니 찌뿌듯합니다. 리듬이 깨지면서 엉망이 되어갑니다.

 쉬는 기분이 나질 않아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어젖혔습니다. 내려다보는 풍경 중에 어색한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베이지색 잠바에 둥그런 모자를 쓴 사람! 그런데 검은 장갑을 낀 오른손에는 지팡이가 들려있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아파트 담장의 난간 대를 간신히 움켜잡으며 한 발짝 한 발짝 옮겨갑니다. 풍을 맞은 듯 오른쪽 다리는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처럼 땅에 질질 끌렸습니다.

 더 마음이 아픈 건 길가는 사람들이 그 사람을 마주치지도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겁니다. 젊은 애건 나이 든 사람이건 외면하며 앞만 보고 걸어갑니다. 걸인을 쳐다보는 행동입니다. 나중에 그렇게 되지 않을 사람들이겠지만, 그들만의 자유라지만, 그 노인은 너무나 외로워 보입니다.

그 사람도 이렇게 몸이 망가지기 전에는 그들처럼 자유를 그리며 당당하게 어깨를 펴며 걸었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이전에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모르지만 자기만의 세상이 있었을 텐데 서러울 겁니다.

  그렇게 힘들어하며 걷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마저 아프겠지요. 웃음이 가득한 밥상도, 빛바랜 가족사진도, 차 한잔 나누던 시절도 그리울 겁니다. 안개 빛 같은 희망마저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았음을 뒤돌아보고, 구름처럼 흘려보낸 그런 시절을 후회할는지도 모릅니다. 애들 다 키워놓고 할 일 다 해놨으니 이제는 편안히 쉬어 볼까 마음먹자마자 이렇게 몸이 망가진 걸 한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디서부터 출발해 왔는지 모르지만, 정상으로 되돌아가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어찌 됐건 지난날들의 시간들은 메워지지 않을 겁니다.

   하늘에서 비가 떨어집니다. 점점 빗방울이 굵어집니다. 비가 온다고 예보를 들었을 텐데 그냥 나온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시간 안에 닿을 걸 짐작하고 그냥 맨몸으로 나왔는지는 모릅니다. 그 사람의 어깨가 싸늘해 보입니다.

  한 마리의 새가 나뭇가지에서 날아오릅니다. 하늘을 날 자유도 갖지 못한 노인은 물끄러미 그 새를 바라봅니다. 새들이 날고 있는 공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미약함을 느낍니다. 자신의 꿈을 새기지 못해 아쉬워하는 눈빛입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발걸음. 지팡이에 의지한 몸이 무척이나 무거워 보입니다.

  그런데 다행입니다. 어색한 발걸음이지만 힘이 있어 보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는지 목소리가 커집니다. 새로워지려고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겨가는 의지가 대단해 보입니다.

  나는 날지 못하는 새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새로움을 위해 새롭게 출발하는 그 사람의 앞길에 비를 내리지 말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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