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을 거니는데 저만치에 꽃밭이 있다. 요모조모 심은 꽃이 참으로 근사하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덜 예쁘다. 시들거나 진 것도 있다. 모둠으로 심었다고 해도 여기저기 비어 있어 휑하기도 하다.
텃밭 농사를 지을 때 경험했듯 상추 쑥갓 같은 채소 작물이든 토란과 들깻모도 다닥다닥 붙여심은 것은 잘 자라지 않고 커가면서도 줄기가 비실비실했다. 그래 농작물이 잘 크도록 솎아내기 해주고 나니 제 모습대로 자라고 열매 또한 부실하지 않았다.
내가 수필가로 등단하여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혼자 떨어져 있는 시간이 있다 보니 가능했다고 본다. 청주에서 승용차로 두 시간 넘게 걸리는 단양으로 발령 나 혼자 지낸 적있다. 그때 퇴근하면 아무도 없는 관사, 달빛마저 애처로운 밤의 시간 속에 묻혀 있다 보니 그 많은 시간을 멍하게 벽만 쳐다보고 있기 무료했다. 적막만 가득한 방에서 무엇이라도 해야 무료한 시간을 메울 것만 같았다. 어떤 일이라도 매달리지 않으면 공허함이 기적(汽笛) 소리와 함께 찾아들 뿐이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고 예전의 나로 돌아가기도 하다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창 시절엔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빌려다 읽었고, 사춘기 시절, 그 풋풋한 사랑의 편지를 친구를 대신해 써주기도 했던 내가 아닌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반 아이 중에 마음에 맞는 애들끼리 모임을 결성하고, 군대 가기 전에는 《오번지》라는 문집도 발간하는 등 문학청년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해 냈다. 한때는 노인의 고독을 모태로 소설을 습작하던 시간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가슴속에만 넣어 두었던 원초적 본능인 글을 써 보자 하는 내 안의 자아(自我)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
방에는 채널을 이리저리 여러 번 돌려야 간신히 화면이 잡히는, 그것도 선명하지 않고 지지직거리는 흑백 TV 한 대와 한글1.0을 깐 거의 수명이 다해가는 컴퓨터만 있는, 그 추운 겨울엔 보일러가 가동되지 않을 정도로 냉기가 가득한 방엔 친구가 되어줄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직장 동료들과 저녁 겸 술 한잔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심심하다 하여 그 수많은 밤을 술을 안주 삼아 지새울 수 없었다.
하여, 그때부터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그저 생각나는 것을 적었다. 하다못해 오늘은 뭐 했지 아이들이 일기를 쓰듯, 그날그날 한 일을 적어내려 갔다.때맞춰 2002년은 월드컵이 개최되던 해라 그토록 열광하며 필승 코리아를 목 놓아 외치기도 했던 감동을 글로 적어 공모전에 내기도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글이 내게로 왔다. 시 한 편 쓰고, 산문인지 에세이인지 하는 닮은 것을 지어내기 시작했다.
결혼하여 살다 보면 진정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다. 수필 한 편을 쓰더라도 몇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죽치고 앉아 있는 사람을 좋아할 리 없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여러 날 지속된다면 꼴 보기 싫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나는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외지에서 글쓰기 훈련에 매진할 수 있어 다행이지 싶다.
둘이 아무리 사이가 좋아 붙어 지내는 사이일지라도, 사랑이 넘쳐나는 나날이라도, 너무 가까이 붙어 지낼 일만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세 번 이상 하면 싫증이 나는 법이고,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잔소리가 되고 만다. 주말 부부가 때로는 애틋하듯, 떨어져 있다 보면 보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안부를 묻게 마련이다. 서로가 조금씩 놓아주다 보면 애정도 깃든다. 늘 붙어 있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시비가 붙고, 사사로운 일에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싸우기도 한다.
그렇다고 일부러 떨어져 살라는 말은 아니다. 붙어 있더라도 가끔은 놓아줘야 한다. 아량과 배려하는 마음을 풀어내다 보면 나 자신도 자유로움을 얻는다. 사랑은 자신을 위한 선물이다.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진자 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드라마『도깨비』에서 공유가 읊조리는 말처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 붙어 있는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귀하여 결혼을 택했을 것이다. 애틋해서, 놓아줄 수 없어서 신혼 방을 꾸렸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놓아주는 연습은 필요하다. “결혼의 성공은 정당한 짝을 찾는 것에 있는 것보다 정당한 짝이 되는 데 있다.”라고 주창한 사람이 있고, 레프 톨스토이는 “행복한 결혼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얼마나 잘 맞는가 보다 다른 점을 어떻게 극복해 가는 데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진정 둘이 좋아한시라도 떨어지면 못 살 것 같아 결혼한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그렇더라도 상대방만을 위해 애쓰다 보면 진정 자신에겐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저울추가 무게 중심 따라 어느 한 방향으로 쏠리는 것을 보았듯이 사랑의 균형점을 맞추며 살아가는 일이 중요하다.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적당한 거리 두기 할 때 더 사랑스럽지 않을까. 저만치 떨어져서 상대방을 바라볼 때 빛이 나는 법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살아간다면 상대방이 더 소중하게 다가올 것이고, 사랑스러운 마음도 늘어나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