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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밥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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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당 Oct 20. 2023

어떤 딸

  장례식장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뒤였다. 별조차 보이지 않는 까만 밤이었다. 건물 입구에서는 사람들 몇 간이 모여 어둠과 정적을 걷어내려는 듯 담배를 피워 물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기저귀만 떠올려도 눈물이 나는 거 있지. 엄마 몸을 매만지고 씻겨 드리는 게 일이었어.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도 엄마가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들면 하던 일을 못 하고 되돌아왔어. 밖에 나가기는커녕 밥 떠 넣어 드리고 시간 맞춰 약 챙기고 오줌똥 받아내고……. 그게 일과였어.”


  친정이 거제인 여자는 만날 때마다 바다 얘기를 꺼냈다. 천장이 내려앉을 정도로 허름한 집이었지만 그곳이 그립다면서. 그때 여자는 커다란 눈동자를 굴려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와 소금기 밴 바다를 걷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것 같다며.


  밥 먹다가도 나만 먹나 하는 생각이 들면 입에 넣었던 밥알을 넘기지 못했어. 어디 넘어가야 말이지. 음식을 만들다가도 냄새가 엄마가 누워 있는 방까지 스며드는 건 아닌가 하여 늘 조심했어. 밥 먹은 입이 죄스러워 손으로 입을 막아가며 엄마에게 다가갔어.

  그렇듯 엄마는 언제나 내 차지였지. 남편이건 아이들이건 집 나가면 그만이잖아. 그렇게 온종일 엄마 옆에 있다 보면 내 몸도 파김치가 돼 있었어. 팔이 저려 잠을 설친 날도 여러 날이야. 그래 하도 신역이 고되어 간병인을 쓰려고도 했어.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돈 들어갈 데가 어디 한두 군데니. 엄마 약값에, 아파트 대출금에, 애들 학원비에. 오죽하면 엄마를 병원에 모시지도 못하고 방바닥에 뉘어 두었겠어.”


  창 쪽 테이블에 자리했던 조문객들이 그녀의 싸늘한 등을 뒤로하고 우수수 떨어지는 꽃잎처럼 슬픔을 내려놓고 자리를 뜬다. 몇 남아 있는 조문객들도 그녀의 외로움과 그녀의 고독이 뚝뚝 떨어지는 밥을 꾸역꾸역 떠 넣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엄마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더라고. 보지 말아야 할 걸 본 거지.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하더라. 내가 우니까 엄마가 울고, 엄마가 우니까 나도 덩달아 따라 울었어. 그런 중에도 엄마는 내 등을 다독여주데. 그런데 있잖아. 그러면 그럴수록 눈물이 더 나는 거 있지. 너도 알다시피 울음보가 터지면 어디 쉽게 그치니. 서러움도 같이 올라오잖아.  

  꽃이 피는지, 비가 오는지 모르고 지냈어. 팔다리가 저리고 등허리가 뻐근해도 엄마 아픈 거와는 비교가 안 되잖아. 그래 사시는 동안 잘해 드려야지, 하루라도 더 사셔야 하는데, 그런 마음으로 지냈어. 그러다 보니까 어느새 가을이더라. 그런데 있잖아. 계절이 바뀌자 엄마의 몸도 변화가 빨라졌어. 퀭한 눈에 거무스레한 입술에 움푹 파인 볼에……. 차마 눈 뜨고 바라볼 수가 없었어. 끝이 보이더라, 끝이.”


  도우미들은 떠난 사람과 어떤 딸의 안쓰러움을 얘기하다가 준비했던 밥과 국이 떨어졌는지 상을 보는 손길이 분주해진다. 여기에 왔다가 어디론가 다시 길을 나서야 하는 조문객들을 챙기느라 몸놀림이 빨라진다.




  엄마! 엄마! 죽은 게 아니지, 아니지. 그렇지……. 그렇지 않아도 남편은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전화하라고 그랬어. 그런데도 난 남편을 부르지 않았어. 혼자서 엄마를 지켜 드리고 싶었거든.

  엄마 몸이 점점 식어 갔어. 그런데도 무섭지 않았어. 나를 낳아 길러준 엄마여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하지만 어쩌겠니. 엄마를 보내드려야지. 우선 대야에 따뜻한 물을 퍼 담아 들여왔어. 그런 다음 엄마 몸에 붙어 있던 옷가지를 하나하나 벗겨냈어. 허물을 벗듯 엄마 몸에서 아픔의 조각들이 떨어져 나갔어. 그때만큼 엄마 얼굴이 편안해 보인 적이 없더라. 난 수건을 적셔 엄마 몸에 붙었던 인연의 고리를 떼어냈지. 구석구석 손 닿는 데까지. 그리고는 엄마 마지막 가는 길 예쁘게 하고 가시라고 새 옷 입히고 손톱 발톱 깎고 얼굴에도 곱게 분을 발라 드렸어. 그렇게 혼자, 혼자 힘으로 염() 의식을 진행했어.”


  화장하지 않은 여자의 얼굴에 알지 못할 미소가 드리운다. 움푹 파인 볼이 더 깊어 보인다. 밤이 깊어가자 여자는 참았던 눈물을 테이블 위로 쏟아낸다.


 “여기는 아들이 하나도 없는 거요?”


  어떤 조문(弔文)객이 문상(問喪)을 마치고 테이블에 앉으면서 하는 말이다. 나는 아내와 아내의 친구가 주고받는 말을 듣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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