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성실한 사람이 먼저 무너지는가

문제 있는 리더가 고르는 ‘표적’의 조건

사람은 오래 억울한 일을 겪으면 질문의 방향이 조금씩 비틀린다.


처음에는 “왜 저 사람들은 나를 저렇게 대할까?”라고 묻는다.

시간이 더 지나면 질문이 바뀐다.


“혹시 내가 뭘 잘못했나?”


이때 생기는 자책은 성격이 약해서 생긴 것도, 멘털이 약해서 생긴 것도 아니다. 그런 환경에 오래 노출됐다는 증거에 가깝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하게 무너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익숙한 방식으로 자신을 의심한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내가 기준을 너무 높게 잡은 건가.”

하지만 이런 생각은 보통, 아무 기준 없이 대충 사는 사람에게 서가 아니라, 나름의 기준을 붙들고 버티는 사람에게서 먼저 시작된다.


조금 냉정하게 말해보자.

책임감 있고, 성실하고, 전문성을 갖춘 사람은 이상하게도 ‘문제 있는 리더’에게 표적이 되기 쉽다.


남들이 보기엔 당신은 FM에 가깝다. 기준이 분명하고, 일을 대충 넘기지 않는다. 회의에서 애매한 이야기를 들으면, 속으로 한 번쯤은 “저렇게 해도 되나?” 하고 체크해 보는 사람이다. 이런 유형을 불편해하는 리더가 분명 존재한다.


실력이나 기준이 부족한 사람 입장에서 이런 사람은 두렵다. 같이 일하다 보면 자기 부족함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비교가 되고, 쓸데없이 위축되고, 통제도 잘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애매하게 넘기던 것들이 더 이상 넘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이상하게도 가장 위협된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가장 공격적이 된다.


당신이 그런 사람들을 끌어당긴 게 아니다.


그 사람들이 자기 안의 결핍을 감당하지 못해서, 당신을 위협적인 존재로 본 것에 가깝다.


조직의 문제도 비슷하다.
조직이 미성숙하고 리더십 공백이 오래가면, 이상한 역전이 일어난다. 제대로 일하지 않는 사람이 더 편하게 지내고, 성실한 사람이 더 빨리 지친다.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은 조용하다. 문제가 생겨도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나서지 않고, 애매한 상황이 오면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선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반대로 책임감을 가진 사람은 불만과 요구를 끌어당긴다. “저 친구라면 이것도 해주겠지” 하는 기대가 붙고, 그 기대가 조금씩 당연한 것으로 굳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묘한 상황이 벌어진다. 문제가 되는 사람은 계속해서 경계선 바깥으로 빠져나간다. 조직에 남은 빈자리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메운다. 겉으로 보기엔 “잘 돌아가는 팀”처럼 보일 수 있다. 실제로는 몇 명이 과부하를 견디며 간신히 버티는 구조일 뿐인데도.


그 안에서 오래 버틴 사람일수록 자책이 깊어진다.

“이 정도로 힘든 건 나한테 문제가 있어서겠지.”

하지만 내가 현장에서 본 사람들은, 대체로 정반대였다. 자책이 많은 사람일수록 대체로 이런 공통점이 있었다. 자기 일에 대해 기준이 높고,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를 배려하려고 하고, 조직 분위기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했다. 내가 하는 일이 헛수고가 아니라는 자부심이 있고, 최소한 이건 넘지 말아야 한다는 윤리 기준을 붙들고 있었다.


이런 사람일수록 이상한 일을 겪고 나서도, 먼저 자신을 의심한다.
“혹시 내가 너무 깐깐했나, 내가 좀만 더 참았어야 했나.”


반대로, 능력은 없는데 자기 합리화에 익숙한 사람은 좀처럼 자책하지 않는다.
부당한 말을 서슴없이 던지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무능한 리더는 밤에 잠 못 이루며 “내가 너무했나?”를 곱씹기보다는, 대개 “쟤가 문제지” 쪽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이런 말을 조용히 덧붙이고 싶다.
지금 당신이 스스로를 탓하고 있다면, 그건 당신이 더 많은 걸 보고, 더 오래 버티고, 더 깊이 상처를 받았다는 신호일뿐일 수 있다. 당신이 틀려서가 아니라, 당신이 너무 오래 제대로 버티려 했기 때문에 이런 자책이 생겼다고 봐도 된다. 바꿔야 할 건 당신의 책임감이나 기준이 아니라, 그런 사람을 소모품처럼 쓰는 방식과 환경 쪽에 가깝다.


최소한 이 질문 하나만은 바꿔보자.

“내가 문제인가?”에서
“이 구조가 정상인가?”로.


그 질문을 바꾸는 순간부터, 자책은 조금씩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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