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가 불안한 리더는 절대 할 수 없는 말

己欲立而立人

흑백요리사 시즌 2


처음엔 비딱하게 봤다. 시즌 1의 성공을 등에 업고 나온 출연자들의 얼굴에서 '나 여기 있소' 하는 노골적인 욕망이 읽혔기 때문이다. 말투는 연출일 것이고, 표정은 계산된 연기라 치부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의 빗장을 먼저 걸어 잠그는 쪽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빗장을 열어젖힌 건, 처절한 사연으로 밀어붙이는 도전자들이 아니었다. 이미 정점에 서 있는 대가들이었다.



후덕죽 셰프나 선재 스님, 그리고 박효남 명장 같은 분들. 그분들이 던지는 말은 화려하지 않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 특유의 말투. 그 담백함이 화면을 뚫고 전해질 때, 의심은 경외로 바뀌었다.


​특히 내 마음을 건드린 말은 이것이었다.

"내 어깨를 딛고 더 높이 올라가라."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라는 말은 흔하다. 하지만 실제로 "내 어깨를 밟아도 좋다"라고 말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건 친절한 척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상대가 커질수록 내 입지가 좁아질까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절대로 내뱉을 수 없는 말이다. 누가 올라타도 자기 세계가 허물어지지 않을 만큼 지반이 단단한 사람만이 짧고 담백하게 말할 수 있다. 그 무심한 배려가 결국 신뢰의 실체가 된다.



​논어의 '기욕립이립인 기욕달이달인(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이라는 구절이 떠오른 건 그 지점이었다. 내가 서고 싶으면 남을 먼저 세우고, 내가 닿고 싶으면 남을 먼저 닿게 하라는 말.


자기 포장에 매몰된 세상에서 사심이 걷힌 자리에 남는 건 결국 '태도' 하나뿐이다.


​조직도 다르지 않다. 성과는 숫자로 증명되지만, 리더의 품격은 말끝과 표정에서 결정된다. 팀원의 성장을 보며 묘한 불안을 느끼는 리더가 있고, 그것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다음 판을 깔아주는 리더가 있다. 겉으로는 둘 다 "축하한다"라고 말하지만, 팀원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그 목소리에 담긴 온도의 차이를.



​리더의 역할은 거창한 비전을 선포하는 데 있지 않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흩어지려는 마음들을 붙잡아둘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되는 것, 그리고 기꺼이 내 어깨를 딛고 올라가라고 말할 수 있는 단단한 지반이 되어주는 것이다.


진짜 실력자는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성을 쌓지 않는다. 대신 타인이 더 높이 볼 수 있도록 자신의 어깨를 낮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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