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사람의 공기

내가 만나본 진짜 강한 사람들은 대체로 조용했다. 그건 소극적인 태도와는 결이 다르다. 오히려 쓸데없는 곳에 쓸 힘이 없어서 에너지를 아껴두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굳이 큰소리로 존재감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은 표정부터 편안했다. 잘생겼거나 말솜씨가 화려해서가 아니라, 얼굴에 불필요한 긴장과 과장된 친절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있는 자리에서 공기가 묘하게 정리되는 이유를 회의실에서 발견하곤 한다. 누군가 목소리를 높이며 분위기를 장악하려 할 때, 진짜 강한 사람은 그 흐름을 끊지 않는다. 그저 끝까지 듣고 메모한다. 그리고 모두의 힘이 빠질 때쯤 한 문장을 얹는다. "이 방향이면, 다음 달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 보입니다." 그 한마디에 회의실은 차분해진다. 누가 이겼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남느냐로 시선이 옮겨가는 순간이다.


강한 사람들은 사람을 파악하는 속도가 빠르다. 몇 마디 섞어보면 상대의 결을 읽어내지만, 그걸 굳이 티 내지 않는다. 감이 빠른 사람은 많지만, 그 감을 침묵으로 숙성시킬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처음 본 사이에서 상대가 과하게 선을 넘으며 다가올 때, 그들은 웃으며 악수는 하되 자기 속도를 내어주지 않는다. "천천히 하죠. 일부터 봅시다." 이 짧은 반응은 관계의 주도권을 감정이 아니라 자신에게 두겠다는 선언이다. 침묵이 어색해서 말을 쏟아내는 사람과 달리, 그들은 침묵을 도구로 쓸 줄 안다. 경계에 대한 감각도 남다르다. "말하고 싶을 때만 말해요." 상대가 힘든 이야기를 멈췄을 때, 그들은 억지로 캐묻지 않는다. 돕고 싶다는 명분으로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것이다. 이건 차가움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가장 고차원적인 예의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그들의 강함을 실감한 건 업무가 무너졌을 때였다. 강한 사람들은 실패 앞에서 드라마를 쓰지 않는다. 요란한 복귀 선언도, 비극적인 자책도 없다.


큰 프로젝트가 엎어져 팀원들이 패닉에 빠졌을 때, 그들은 가장 먼저 말을 꺼낸다.

"누구 탓을 하기엔 회복이 늦어집니다. 복구 순서부터 잡죠."


실수가 드러났을 때 변명 대신 "제가 정리했습니다. 오늘 안에 바꾸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담백함. 여기서 승부가 갈린다. 강함은 '실수하지 않는 완벽함'이 아니라 '실수를 처리하는 운영 능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강한 사람을 볼 때 카리스마 같은 추상적인 단어를 떠올리지 않는다. 대신 그의 '운영 방식'을 본다. 말보다 결과를, 표정보다 복구력을, 관계의 과시보다 경계를 지키는 힘을 본다. 진짜 강한 사람은 남을 눌러서 올라가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를 무너뜨리지 않는 방식으로 조용히 버티고, 끝내 다시 선 사람이다.

그게 내가 배운 강함의 진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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