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논리의 늪을 건너는 법
어느 조직이든 '우리 편'과 '저쪽 편'을 나누는 순간, 합리적인 대화는 멈춘다.
현장에서 만나는 갈등의 이면에는 늘 이 진영논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단순한 의견 차이라면 조율이 가능하겠지만, 상대에 대한 적대감이 선행되는 순간 모든 논의는 소모적인 전쟁으로 변질된다. 이는 단순히 정치를 넘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일터와 일상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가장 치명적인 병폐다.
순자는 일찍이 "주장에는 근거가 있고, 말에는 이치가 있어야 한다(持之有故, 言之成理)"고 말했다. 당연한 소리 같지만, 진영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 원칙은 너무나 쉽게 무시된다. 사안의 본질이 무엇인지, 무엇이 옳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내 편의 이익'만이 유일한 이치가 된다.
합리적 근거 대신 감정적인 구호가 앞서고, 이성적인 토론 대신 비난의 목소리만 높아지는 현실은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경계에 서 있는지를 보여준다.
머리가 둘 달린 새, 공명지조(共命之鳥)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서늘하게 다가온다. 한쪽 머리가 미워 다른 쪽 머리가 독을 삼켰을 때, 결국 죽는 것은 새 한 마리 전체였다. 상대를 무너뜨리면 내가 승리할 것 같지만, 사회라는 한 몸을 공유하는 이상 그 피해는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극단적인 양극화 속에서 우리가 마주할 결과는 승리가 아니라 함께 가라앉는 공멸일지도 모른다.
조지 오웰은 명백한 사실을 외치는 것이 의무인 시대를 말했다. 진실이 진영의 논리에 가로막히고, 뻔히 보이는 사실조차 입맛에 맞게 왜곡될 때 민주주의는 뒷걸음질 친다.
'정의'나 '공정' 같은 단어들은 어느덧 자기 진영을 호위하는 방패로 전락했고, 대중은 정치적 피로감 속에 무관심으로 숨어버린다. 질문하지 않는 집단은 건강할 수 없으며, 비판이 사라진 조직은 반지성주의라는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진영은 개인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한다.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를 내면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어 입을 막는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조직과 사회를 지탱하는 힘은 맹목적인 쏠림이 아니라, 자유롭게 사고하는 개인들의 연대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내 편의 잘못을 아프게 지적할 수 있는 용기, 상대의 옳은 소리를 인정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