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이라는 안락한 감옥을 부수는 법

물리 법칙은 인간의 변화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에너지를 요구할 뿐.

인간이 철저히 관성의 법칙을 따르는 존재라는 말은, 언뜻 들으면 체념 섞인 진리처럼 들린다. 실제로 우리 일상은 반복되는 습관의 굴레다. 어제 하던 짓을 오늘 또 하고, 익숙한 길로만 걷는다. 대학원에서 범죄심리학을 공부하며 확인한 사실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반복된 행동은 뇌의 신경회로를 더 굵고 단단하게 다진다. 이른바 '습관의 고속도로'다. 한 번 닦인 길은 웬만해서는 끊어지지 않고, 인간은 그 궤도 위를 달리는 열차처럼 관성에 몸을 맡긴다. 이 생물학적 메커니즘은 우리가 왜 그토록 변화에 저항하는지, 왜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사는지에 대한 서글픈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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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삶을 물리학의 관성 법칙에 그대로 대입해 "과거가 곧 미래"라고 단정 짓는 건 게으른 논리다. 뉴턴의 제1법칙을 다시 보자. 관성은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을 때'만 유지된다. 뒤집어 말하면, 외부에서 충분한 힘이 가해지면 운동 상태는 반드시 변한다는 뜻이다. 거대한 질량을 가진 물체일수록 멈추기 어렵지만, 일단 임계점을 넘는 충격이 가해지면 방향은 꺾이기 마련이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 뼈아픈 사회적 압박, 혹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내적 각성. 이 모든 것이 우리 삶의 궤도를 뒤트는 '외부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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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들춰보면 이 변화의 에너지는 더 선명해진다. 한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독립운동가가 하루아침에 친일의 길을 걷거나, 반대로 기득권의 안락함 속에 살던 이가 거대한 시대적 조류에 휘말려 투사로 변모하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만약 인간이 오직 관성에만 지배되는 기계였다면 이런 극적인 변신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거대한 신념의 전환은 그에 상응하는 거대한 에너지의 충돌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관성은 유지를 설명하는 도구일 뿐, 변화의 불가능성을 증명하는 족쇄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여기 있다. 인간은 굴러가는 돌멩이와 달리 스스로 '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자기 성찰이라는 엔진을 돌려 의지라는 에너지를 생산한다. 물론 부정적인 습관을 끊어내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이식하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낡은 타이어가 마른 노면을 긁으며 내는 비명 같은 저항이 따른다. 그러나 환경을 바꾸고, 작은 성공의 기억을 하나씩 쌓아 올리는 행위는 그 자체로 기존의 관성을 상쇄하는 강력한 역추진 에너지가 된다. 우리는 단순히 반복되는 패턴 속에 머무는 기계적 존재가 아니라, 자기 궤도를 스스로 수정할 수 있는 성장의 주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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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간의 본질을 관성 하나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지나치게 빈약하다. 관성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활용해야 할 동력이기도 하다. 미래는 과거의 지루한 복제품이 아니다. 예상치 못한 외부의 충격에 유연하게 반응하고, 때로는 스스로 내린 서늘한 결단 하나로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핸들을 꺾을 수 있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선이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가 개입할 수 있는 단절된 시작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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