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공정한 제도란 없다.

구체적인 피드백만 있을 뿐

회사는 5월 회사라 평가 시즌인 3-4월 에는 사무실의 공기가 바뀐다. 팀장들은 면담 자리에서 덜 다칠 언어를 고르느라 머릿속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하지만 정교한 수식도 "왜 제가 B인가요?"라는 짧은 질문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설명은 길어지고 표정은 굳는다. 매년 반복되는, 그러나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풍경이다.


​문제는 면담실 밖에서 터진다. 평가 결과가 나온 뒤 조용히 이직을 준비하는 이들은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다. 성과로 버티던 핵심 인재일수록 사직서를 올리는 속도는 더 과감하다. 남겨진 이들은 그 뒷모습을 보며 '저렇게 끝나는구나'를 학습한다.


우리는 자꾸 '완벽하게 공정한 제도'라는 환상을 쫓는다. 하지만 공정함은 규정집이 아니라 사람 마음에 사는 생물이다. 보상을 촘촘하게 설계하면 동기가 살아날 것 같지만 현실은 반대로 흐르기도 한다. '일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점수를 받기 위해서'로 동기가 바뀌는 순간, 조직원이 내뱉는 모든 말에는 계산서가 첨부된다.



​나는 공정함을 '나눠 갖는 비율'로 정의하는 습관부터 버리기로 했다. 1/N로 깔끔하게 쪼개는 게 공정이 아니다. 그 사람이 실제로 만든 결과와 기여를 구체적으로 짚어주는 것, 그것이 현장에서 작동하는 진짜 공정이다. 팀장은 등급을 찍는 판관이 아니라, 다음 걸음을 잡아주는 가이드여야 한다.


일대일 면담 자리에서 딱 세 가지만 붙잡는다. 이 사람의 강점은 무엇인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리고 3개월 안에 어떤 결과를 만들 것인가. 이 중 하나라도 흐릿하면 면담은 결국 등급에 대한 구질구질한 변명으로 흐르고 만다.

​평가는 '판정'이 아니라 '정리'여야 한다. 연말에 벼락 치듯 점수를 통보하지 않으려면, 분기든 수시든 짧게라도 자주 체크인을 쌓아야 한다. 점수가 아니라 진행 상황을 보는 것이다. 잘되는 건 유지하고, 막힌 건 치워주고, 다음 목표를 작게라도 확정하는 과정. 그 기록들이 쌓이면 면담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마침표를 찍는 자리가 된다.



업무량을 적시한 팀장의 수시 평가 엑셀은 필요하다. 그러나 엑셀 속 수치는 사람을 설득하지 못한다. 결국 남는 건 대화의 밀도이고, 자신이 납득할 수 있게 '구체적으로 말해준 순간'의 기억이다.


이번에도 평가에서 그걸 놓치지 않으려 한다. 등급이라는 꼬리표가 아니라, 다음 3개월을, 6개월을 버틸 힘을 남겨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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