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보경 SNS 테러와 한·대만 30년의 그림자

"삼진 하나, 수만 개의 댓글 — 혐한은 어디서 왔는가"

親愛的台灣朋友們,


輸球的痛我們都懂。但文保璟在場上拼盡全力,把比賽的挫折化為對他個人的攻擊,這不是體育精神。台韓之間有複雜的歷史,但那不是今天的事。希望這份熱情留在球場上。謝謝那些留下道歉的台灣朋友——你們才是真正讓人敬重的人。


(지는 것의 아픔은 압니다. 하지만 문보경은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경기의 좌절을 선수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돌리는 것은 스포츠 정신이 아닙니다. 한국과 대만 사이에 복잡한 역사가 있지만, 오늘의 일은 오늘의 것입니다. 이 열정이 그라운드 위에 남기를 바랍니다. 사과 댓글을 남긴 대만 친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 당신들이 진짜 존경받을 사람들입니다.)



경기가 끝난 직후였다. 문보경이 "가자 마이애미로!"라는 짧은 문장을 SNS에 올렸을 때, 누군가는 그 댓글창이 전쟁터가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루도 지나기 전에 1만 2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그 대부분이 중국어였다.



"한국인들은 쓸모없다." "마이애미 가는 비행기에서 추락하길 바란다." 세월호 참사를 비틀어 조롱한 댓글도 있었다. 탈락한 대만 팬들이 몰려온 것이다. 분노라기보다는 — 어디선가 오래 쌓인 무언가가 한꺼번에 쏟아진 것처럼 보였다.



그 분노의 명목은 경기 결과였다. 한국이 8 득점 이상을 올리면 대만이 최소실점률 계산에서 앞서 8강에 오를 수 있었는데, 한국의 득점이 7점에 멈췄다. 특히 9회 초 2사 1루에서 문보경이 세 번째 공을 그냥 지켜보며 삼진으로 물러나자, "일부러 배트를 내지 않았다"는 음모론이 퍼지기 시작했다.



말이 안 된다. 당시 한국은 7대 2로 앞선 상황이었고, 호주는 9회에도 추격의 여지가 있었다. 한국 선수들이 이기고 있다고 손을 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문보경이 그 경기에서 무엇을 했는지도 확인이 필요하다. 2회 선제 투런 홈런, 3회 적시타, 5회 추가 타점. 3안타 4타점. 대회 조별리그 전체 타점 1위였던 선수다. 마지막 타석에서 삼진을 당했다고 해서 그 선수에게 "고의"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경기를 보지 않았거나 보고도 믿고 싶은 것만 본 것이다.



음모론은 그냥 음모론이 아닌 경우가 많다. 저 밑에 다른 것이 있을 때 가장 황당한 이야기가 가장 빠르게 퍼진다.



1992년 8월 24일. 서울 명동에 걸려 있던 청천백일기가 내려졌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세운 재외공관이 그날 문을 닫았다. 44년간 이어온 한국과 대만(중화민국)의 공식 관계가 그렇게 끊어졌다. 중국과 수교하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단교 자체는 어쩌면 예고된 수순이었다. 1971년 유엔에서 퇴출당하고, 1979년 미국과 단교하고, 1972년엔 가장 가까웠던 일본마저 떠났다. 한국은 그 모든 결별 가운데 가장 늦게, 아시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수교국으로 버텼다. 그러다 함께 떠났다. 일본보다 20년이나 더 의리를 지킨 셈이었는데, 막상 단교 통보는 사흘 전이었다. 특사도 없었다. 주한 대만 대사관이 있던 명동 건물은 중국 측에 넘어갔다. 대만이 매각이라도 해보려던 건물이, 협상조차 해볼 시간 없이 사라졌다.



"배은망덕하다"는 말이 대만에서 나온 건 단교 자체보다 그 과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상처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다시 열린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균형이 필요하다.



일본도 대만과 단교했다. 프랑스는 대만 외교관을 추방할 때 경찰견까지 동원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욕적인 방식이었다. 그런데도 대만의 반일 감정은 크지 않다. 일본은 지금도 대만에서 가장 우호적인 국가 중 하나다. 유독 한국을 향한 반감이 더 거친 데에는, 단교의 상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다른 감정들이 섞여 있다.



그 감정 중 하나는 경쟁 심리다. 야구에서 특히 그렇다. 대만에서 야구는 그냥 스포츠가 아니다. 국제무대에서 대만은 '중화 타이베이'라는 이름으로 나가야 한다. 국기를 내걸지 못하고, 국가도 부르지 못한다. WBC는 그 제약 속에서도 대만이 '우리'라는 감각을 가장 강하게 느끼는 무대다. 그 무대에서 한국에게 진다는 건 단순한 패배가 아니다. 존재감을 증명하려던 자리에서 밀려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대만과 한국의 야구 경기는 대만에선 한일전 수준의 빅매치다. 그 무게는 오래된 것이다. 그 무게가 이번에 SNS 댓글창으로 쏟아진 것이다.



대만이 지금 처한 국제적 고립, 정체성의 불안, 야구를 통해 국가의 자존심을 확인하려는 욕구 — 이것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특정 선수의 SNS에 세월호 참사를 들먹이는 댓글을 다는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역사적 배경이 혐오의 면죄부가 되는 순간, 그 배경 자체도 더럽혀진다.



문보경은 1992년에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그는 그라운드에서 뛰었고, 4타점을 만들었고, 마지막 타석에서 삼진을 당했다. 그게 전부다.



다행스러운 것은, 대만 안에서도 그걸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대만 사람들이 대만을 더 이상 창피하게 하지 말라." "나도 대만 사람이지만 이런 댓글이 부끄럽다." 사과 댓글을 남긴 이들이 있었다. 조용하고 상식적인 목소리는 언제나 소란보다 늦게 보인다. 하지만 있다.



스포츠는 국가 간의 감정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거울이다. 때로는 30년 묵은 외교의 상처가 야구공 하나에 실려 나오기도 한다. 그 거울이 혐오를 비추기 시작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혐오에 같은 언어로 응수하는 게 아니라 — 그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무엇이 저 밑에 쌓여 있는지.



그리고 나서야, 진짜 대화가 가능해진다.

작가의 이전글항해와 표류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