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선생님의 모기잡는 몸짓이 전하는 평화
“선생님, 저-기 검은 점 보이지예, 그거 모기라. 모기 좀 잡아줍서”
수련실을 가로지르는 난데없는 부탁에 유쾌하게 “ 예~모기 잡으러 갑니다.” 하며 모기채를 들고 모기사냥을 마다않는 선생님의 몸짓과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라고는 없다. 오히려 모기잡고 (물론. 중년의 여성들은 모기를 잡았다며 환호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에 버물리를 가져와서는” ‘우리 언니’ 많이 간지러웠지예”하며 벅벅 긁고 있는 그녀의 팔에 부드럽게 문지른다.
“ 하아. 선생님, 나 따뜻한 물 좀 줍서”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어딘가에서 슬그머니 그러나 당당하게 일어나는 요구에 나는 결국 머리를 쳐들었다. ‘그냥 물도 아니고…. 정수기도 없는 요가원에서 따뜻한 물이라니!’ 비틀기 체위에서 멈추어 있던 나의 시선이 ‘그 언니’에게 가닿았다. 선생님은 수업하다 말고 시원하고 스스럼없는 태도로 끓인 물을 적당한 온도로 맞추어 건넸다. 그 뿐이 아니다. 아무개의 아픈 몸 상담부터 허리디스크가 있는데 왜 몸을 숙이지 말라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 ‘우리 오빠’ 의 부루퉁한 질문 곁에는 쪼그리고 앉아 그의 머리가 비로소 끄덕여질때까지 장황한 설명이 이어진다.
오래된 동네 여탕의 웅성거림과 왁자지껄함을 방불케하는 요가원 문 앞에 떡하니 붙어있는 수련시간이 무색하도록 제 시간에 수련이 시작하는 경우는 없다. ‘샨티’ 하며 오는이를 맞고 ‘샨티’하며 가는 이를 배웅하는 선생님. 샨티는 산스크리트어로 평화를 의미한다.
몸 너머 보이지 않는 세계, 몸과 마음의 상호성을 찾는 길. 지금껏 스쳐온 수많은 요가원에는 공통적으로 형용할 수 없는 고유한 진지함이 따랐기에 나는 ‘우리 선생님’을 만난 첫날 수련이 끝난 후 아래층 식당에서 피어올라 계단에 은은하게 배인 부대찌개 냄새를 맡으며 내려와 알 수 없는 해방감에 짜릿했다. 평화의 어떤 단면을 맛본 것 같기도 했다.
락쉬만줄라( 인도 북부의 도시, 리쉬케쉬의 겐지강을 가로질러 놓인 길고 좁은 다리)에서 모든 행인과 더불어 소들을 몇 초간 멈추게 했던 ‘내 지갑을 가져간 분은 지금 돌려주시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겁니다’ 하는 아시아계의 한 여성의 호령(풉-)에 ‘노 프로블럼’하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아랑곳 않고 밀거니 밀리거니 행진을 이어가던 인간들이 가득한 요가의 성지. 인도 땅의 평화가 이런 것이 아닐까. 결국 지갑을 잃어버리고도 나는 ‘문제없이’ 그립던 아이들과 반려인 ‘이 있는 제주공항으로 돌아왔고, 잃어버린 지갑의 에피소드로 몇해가 지난 지금껏 깔깔대고 있으니 말이다.
2011년 겨울 동네 헬스장에 G.X.(Group excercise :그룹운동)라는 것이 있었다. 엉겁결에 들어 갔다가 한 시간 남짓 요가'수련’이라는 것(운동이 아니었다.)을 하고 눕혀진 내 몸을 휘감던 안도감과 평화로움에 뜨거워진 두 눈가로부터 길을 터 땀이 맺힌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들던 눈물을 설명해 낼 방법이 없었다. 나는 그길로 요가를 검색하고 찾아 읽었다. 읽는 것으로는 갈증이 가시지않아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기어코 알아내고자 고등학교 졸업하고 몇 개월 내리 새벽같이 출근했던 첫 일터, 빵집에서 하루종일 일해 번 이 백만원을 탈탈 털어 지도자과정에 등록했다.
이것이 적게는 열 개 이내의 때때로 수십개의 눈알을 기꺼이 온 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실감한 것은 지도자 과정을 마치고 시작한 첫 수업에서이다. 동네에서 한 가닥씩 할 것 같은 서글서글한, 나를 관통해 속 까지 꿰뚫어 볼 것만 같은 눈알들이 몸에 그대로 와서 박혔다. 달달 떨리는 목소리와 손발을 가까스로 붙잡고 몇 개월간 연습한 대로 갖 가지 동작들을 안내했다. 지도자과정에서 배운대로 고요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수련이 끝난 눈알들을 감기고 적당히 따뜻한 바닥에 그들의 몸을 뉘운 후, 빛의 속도로 그러나 차분하고 우아하게 수련실을 나왔다. 안내데스크에 앉아 안면근육이 뻣뻣해질만큼 ‘평화’롭고 ‘따스한’ 미소로 마지막 수강생까지 배웅했다.
다분히 작위적인 그 행위들에서 나는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그 날 기진맥진한 나의 몸은 수업 첫날이라 특별히 고르고 골라입은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딱 붙는 화려하고 쫀득한 요가복을 벗겨낼 힘도 소진된 채로 내 방 침대위에 널부러졌다. 내 안에서 벅차오르던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른 의미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시작한 요가강사로의 삶도, 숱하게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며 반복하고 있는 수차례의 탈피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첫 수업이 끝나고 널부러진 내 몸과 마음의 무게는 나를 장악하고 있던 여러 얼굴을 가진 당위의 일면이었음을 이제는 인정할 수 있다. 그 이후로도 다양한 몸들을 만났고 기꺼이 내어주는 그들의 몸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묻어나오는 마음을 나눴다. 모두로부터 받은 평화로움과 안도의 이미지, 감촉, 품어주던 체취, 몸을 이끌어 주던 손길과 귓전에 남은 음성들이 내 어딘가에 흔적이 남아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때때로 황홀한 기분이 된다.
지금의 나에게 몸을 마주하는 이 일은 ‘마땅히,으레’와 같이 참을 수 없이 가볍게 붙는 수식어와 관념을 벗겨내는 실험이고, 이미 입혀진 것들을 벗겨내는 것은 변태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어느 날 예기치 못하게 나에게 닿은 우발적이고도 깊은 ‘평화’를 입체적으로 표현할 방법을 찾는 실험정신으로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수련실을 찾는 여러가지 몸들을 만난다. 14년 차 갖가지 기관을 들락대며 수업하는 경험치로 이제는 수업을 안내하는 중에도 그들의 ‘두 눈을 감겨’ 다수의 시선이 꽂히는 따가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안다. 더 이상 몸매를 여지없이 드러내는 '요가를 위한 복장'을 구입하는 것에 돈을 들이지 않는다.
뒷짐지고 10평 남짓한 요가원에 꽉 찬 수련생 사이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선생님은 넉넉한 ‘수용’이라는 이름으로 수련실을 찾는 이들에게 가 닿는 평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것만 같다. 나는 선생님처럼 따뜻한 물을 수련 중에 건네거나 모기를 잡거나 모기약을 발라주지는 못하겠지만 ‘평화’의 해석이 다채로운 스펙트럼 안에서 일렁이는 빛깔처럼 우리를 관통해 빛나는 여정에 있다는 것이 사뭇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