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품는 것들.

참외 세 알을 품고 걷는 삼춘의 몸에 담긴 '모성'

by 쓰임

한살림에 장보러 갔다가 탐스렇게 빛나는 참외가 눈에 띄어 집어들었다가 가격표에 시선이 닿았다. 조용히 내려놓고 집에 돌아왔다. 아이들에게 늘 당당하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돈은 늘 생겨' 이야기하기도 하고 대체로 그렇게 믿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런 현실적인 순간들 앞에서 약간 초라해져서 집으로 돌아온 나를 작정하고 도닥이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뒷집주인삼촌 등장.


삼춘은 늘 먼저 부엌문을 왈칵 열어재낀 다음에 '어디 간?'을 가져다 붙인다. 집에 있다 없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이미 부엌문 안으로 쓱 굴러들어와 있을 삼촌의 두 눈알의 데굴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보호수 곁 언덕배기에 지어진 삼춘의 아름다운 바깥채, 빨간지붕집에 2년 전 부터 들어와살기 시작한 이래 삼촌의 목소리에 대한 나의 반응도 점진적으로 빨라졌다. 아이들이 '엄마'부를 때의 반응속도를 생각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엉덩이로 날아오르듯 목소리의 근원지, 부엌으로 달려가니 샛노랗고 탐스렇게 익은 참외 세 알을 툭 무심하게 던지고 가시는 것이다. 삼춘이 던진 참외 세 알을 닭이 알품듯 고이 안아들고 어안이 벙벙하게 서 자니 대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이 온 몸으로 나를 껴안아주는 것만 같다.


반려인과 하루에 밤잠을 한시간씩 포기하고 한 편씩 정주행 중인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에 결혼을 앞둔 딸, 금명의 엄마가 된 애순은 맞선자리에서 애지중지 키운 딸 금명을 대하는 사돈의 무례에 가까운 냉랭함에 가슴이 무너져내린다. 애순은 애써 모아쥐고 있던 울컥하던 마음을 제주로 돌아가는 택시안에서 남편인 관식에게 봇물 터지듯 쏟아낸다. 고작 관식과 택시기사 둘을 앉혀두고서 온 세상 다 똑똑히 들으라는 듯 꾹꾹눌러 허공으로 내던지던 애순의 혼잣말, '우리 금명이도 친정있어. 엄마,아빠 다 있어.'하는 장면. 1화부터 내리 울어재끼던 반려인 곁에서 눈물이 한방울도 안나던 나는 울었다. 나에게 그런 아빠자리는 십년 전 아빠가 삶을 등지며 비었고, 생각만 그득하고 딱히 돌보지도 못하지만 홀로 남은 엄마 내가 챙기고 돌보아야지 하는 마음의 빚만 선명해지는 것이 울컥했나. 그러다가도 살아가는 일상이 그 자체로 엄마품인냥, 삼춘이 던지고 간 참외 세 알이 잠시 나를 스치던 초라함을 싹 쓸어안아가며 '너도 항상 보듬겨있어'하듯 일상의 사소하고도 선명한 찬란한 얼굴(면)들을 마주하면 울컥하던 가슴이 갈 곳을 잃어버리고 나는 이내 보드랍게 내 몸을 감싸안는 봄볕의 일부가 된다.


그날도 그랬다. 리쉬케시에서 머물던 아쉬람에서 여느 아침처럼 눈을 떴고 그 길로 언덕을 뛰어내려갔다. 목숨줄 내어놓고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는 것 마냥 릭샤와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소와 개들이 자욱하게 엉켜있는 매캐한 도로를 대차게 건너 경사를 따라 펼쳐진, 발이 푹푹 빠지는 흙인지 모래인지에 닿자 거침없이 신발을 벗고 두 발이 마침내 갠지스에 참방참방 잠겼다. 거스를 것이 없이 아래를 향하는 물살을 온 몸으로 받으며 서서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담은 눈물이 줄줄 흘렀다. 온 몸으로 '엄마아--- 엄마아----'목을 놓아 울었다. 그 날 내가 목놓아 부르던 것은 생물학적 엄마가 아니었다. 그러나 '엄마'였다. 에너지. 품어안는 힘. 그날 강가가 나를 불렀고 나는 그것을 들었고 망설이지 않고 뛰어가 품에 안겼다. 아이들이 저 멀리에서도 나를 보고 뛰어와 안기 듯 나는 강에 안겼다.


올해는 무엇이 되었든 꾸준히해보고 싶다 마음으로 시작한 108배. 절을 하며 기도문을 읊는다. 매번 가슴이 자리를 내어주는 구절이 바뀌지만 요즘 콕콕 박히는 문장,


'우연히 생겨났거나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음을 알겠나이다'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든든하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일상이 누군가 조금만 궤도에서 벗어나도 금새 혼잡해지고 조급해지는 것임을, 또한 삶은 궤도에서 벗어나고도 결국 이어지는 것임을 알아가면서도 내가 기도문이라는 것을 읊으며 몸을 구부리고 엎드리고 손을 모으로 일어나 서기를 반복하는 20분의 여유로 엮어진 하루들은 우연이 아니다. 참외를 가져다주는 삼춘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자동차들 틈으로 좌회전할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 알고 일부러 창 열어 확인해주던 버스기사님의 손짓에 훈훈해지던 온도로 부터, 아침마다 부시시하게 일어나 씽긋 웃어주는 아이들로부터, 지치지도 않고 시시덕한 농담을 던지는 반려인의 능청스러움으로부터, 샨티-하며 매일 깃든 평화를 상기하는 요가선생님으로부터 전해받고 품어진 힘, 모성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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