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또 그럴 줄은 몰랐지

여행 가면 꼭 아프거나, 싸우거나

by 밝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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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났더니 6학년인 첫째의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힘이 없다며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그냥 맥없이 누워있다. 자세히 보니 얼굴도 발그스레하다. 혹시나 해서 체온계를 귀에 꽂아보았더니, 역시나 열이 난다. 그것도 고열이. 그런데도 가족들은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아파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첫째 아이는 기질상 긴장과 불안이 많은 아이다. 그런데 겉으로는 표시를 잘 내지 않는다.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마주하기 싫어서 꾹꾹 누른다. 오히려 애써 더 괜찮은 척하며 주변은 물론 스스로에게까지도 자신의 불안을 숨기는 성격이다.


마음의 동요를 티 내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보스턴 공항에 도착부터 내내 그런 상태라는 걸 엄마인 나는 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비행기 탑승 전부터 그랬을지도 모른다. 긴 비행시간 동안 기내식조차 제대로 먹지 않았으니까. 기내에서 두 번의 식사와 한 번의 간식이 나왔다. 하지만 아이는 한 숟갈 겨우 뜨더니 먹지 않았다. 억지로 먹였다면 체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배가 별로 고프지 않다고 둘러댔지만, 긴장해서 입맛이 없었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한국에서 거의 밤을 새우고 출발했고, 그 뒤로 15시간 비행시간 내내 자지 않았고, 보스턴 현지 시각으로 오전에 도착하는 상황이라 또 잠을 자지 못했으니, 어린아이가 두 번의 밤을 꼴딱 지새운 셈이다. 영양가 있는 음식도 제대로 먹지 않고 수면도 불충분했으니 어쩌면 아픈 건 당연한 수순이다.

기질이 예민한 첫째에게 멀고 먼 미국 땅에서의 한달살이는 설렘과 즐거움이기보다 낯섦과 긴장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가족 모두 알게 모르게 그랬을지도 모른다. 머리로는 신나는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몸은 본능에 충실해서 내내 전투태세를 유지했다. 여기저기 살펴보느라 눈이 바삐 돌아갔고, 알 수 없는 언어만 들리는 곳에서 어쩔 수 없는 긴장은 내내 지속되었다. 그래서 나도, 남편도, 둘째도 피곤하고 정신없는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도착한 날 오후부터는 꾸벅꾸벅 졸거나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첫째는 그 상황을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아이라서 버틴 것이다. (시차를 빨리 이겨내고 싶었다는 말도 실토했다)

결국 몸이 버티지 못하고 삼 일째가 되어서 항복선언을 했다. 주인이 몸을 챙기지 않으니, 주인을 살리려고 몸이 스스로 자빠진 셈이다. ‘이렇게 해야 쉴 거니 얘야?’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래도 아이가 아프다는 건 이제 제대로 쉴 수 있다는 말이고, 다시 몸을 회복해서 평소 생체리듬을 되찾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니 다행이었다. 지금 아프지 않고 더 오래 버텼다면 잠깐 아프고 마는 게 아니라 어떤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일이니 모든 게 다행이다.


자주 아프면서 자랐던 첫째는 익숙하게 자기의 몸을 회복시켰다. 몸살이 나면 어떤 단계로 회복되어 가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어서 아이에게는 아플 때 푹 쉬는 기술과 회복의 믿음이 있다. 몸이든 마음이든 인간이 아프면 어서 빨리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오히려 그게 설익은 밥처럼 몸과 마음이 힘을 기를 시간을 빼앗아 간다. 그래서 아플 때 잘 아픈 게 중요하다. 피하지 않고 온전히 아픔과 하나가 되어 회복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정도가 심하다면 몸도 마음도 다른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아픔의 당사자 스스로 면역력을 기를 수 있는 범위는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릴 때 잔병치레를 많이 해서 고생했지만 아이는 덕분에 자기 회복력을 배웠다.


지금 아프면 남은 한 달 동안은 건강하고 즐겁게 놀 수 있겠다며 아이를 토닥였다. 아마도 삼일 정도는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아이는 아파야 하고 엄마인 나도 고생을 좀 하겠지만, 이만하면 다행이다 싶었다. 우리는 펼쳐진 하루에 충실하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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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 살피랴 둘째와 조카 챙겨주고 놀아주랴 이리저리 신경을 많이 쓴 탓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알게 모르게 어른들인 우리도 예민했다가 긴장이 풀린 탓이었는지, 그 이유는 알 수는 없지만 저녁밥을 먹다가 사소한 일로 남편과 언쟁했다. 여행만 가면 꼭 누구 한 사람이 아프거나 싸우게 되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인가 보다.


낯선 곳에 가면 남편은 매우 자유분방해지고 마음이 들뜨는 편이다. 반면에 나는 평소보다 훨씬 예민도가 높아지고 긴장하는 편이다. 우리도 우리를 잘 알아서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하는 여행임을 감안하고 출발 전에 집에서 다 같이 감정 조절을 잘하자고 다짐했다. 불편한 일이 생겨도 싸우지 않도록 노력해 보자며 기도까지 했다. 그런데도 실패했다.

미국에 발을 딛은 후부터 순간순간 남편은 충동적으로 변했고, 순간순간 나는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서로 부딪혔던 때의 감정이 날아가지 않고 하나둘 쌓여있다가 결국 크게 터졌다. 시차로 정신은 없었고, 아이는 낮 동안 아팠고, 해가 사라지고 피곤이 몰려오는 저녁이었다. 싸움이 일어날 만한 완벽한 조건이다.


여행지에 와서 불편한 일을 겪으면 하게 되는 생각이 있다. ‘여기까지 와서 이러네’ ‘왜 하필 여기서 이렇게’ 같은 생각. 생각해 보면 여기에 왔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일 수도 있다. 몸도 마음도 낯선 곳에 적응하느라 더 많이 힘들고, 소진된 에너지로 서로를 향한 배려가 소홀해질 수 있다. 평소 하던 패턴대로 사는 게 아니라 매 순간 새로운 결정과 행동의 연속이기 때문에 더 그럴 수 있다. 게다가 하루 종일 붙어 있다면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불편함이 생기지 않기란 대게 어려운 일이다.

여행지에서 안 좋은 일을 겪으면 속상했었다. 그게 나로 인한 일이든, 타인으로 인한 일이든, 외부로 인한 불상사든, 즐겁게 여행하려고 떠난 건데 즐겁지 못한 기분과 감정을 느끼는 게 싫었다. 이제야 생각해 보니 여행은 오히려 그런 일을 더 많이 겪을 수 있는 시간이고, 아무렇지 않게 마주하는 시간이어야 하는 것 같다. 평소의 일상이 불편과 문제를 막기 위해 살았던 삶이라면, 여행의 일상은 불편과 문제에 면역력을 길러내는 삶이다.


인생은 불확실한 것이다. 여행은 그 불확실성을 더 높인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겨서 힘들 때도 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겨서 행복도 더 많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가족이 보스턴 한 달 생활로 서로를 더 잘 알게 되고 함께 살아가는 능력도 더 기를 수 있기를 바란다. 아픔의 끝은 면역력 획득이고, 갈등의 끝은 결국 다시 사랑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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