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성숙을 가지고 오는 선물이다.
20살의 봄.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는 따뜻한 봄날, 내 마음에도 첫 사랑꽃이 피어났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봄을 잊을 수가 없다. 처음으로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만나는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착각이 들었다.
분명 청소년기에도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은 있었지만 그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만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건 누가 뭐래도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은 그런 감정이었다. 만약 먹기만 해도 첫사랑의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알약이 개발된다면, 세상의 많은 병들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첫사랑의 감정은 그토록 강력하고 내 마음 전체를 아름답게 바꾸어주었다.
처음 나에게 사랑을 알려준 그 사람은 친구들 모임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서로의 첫사랑이 되어 불타는 20살을 보냈다. 아침에 눈떠서 잠들 때까지 머릿속에는 온통 그 사람 생각으로 가득했다. 학교를 가는 이유도 마치고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고, 밤까지 아르바이트하는 날에도 집에 걸어가는 시간이라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는 것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모두 그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한 보조 수단이 될 뿐이었다. 모든 것의 우선순위는 나의 사랑이 되었다.
기계적으로 흐르는 크로노스의 시간 외에 주관적인 시간인 카이로스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걸 첫사랑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경험했다. 그이와 함께 있을 땐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주변은 흐려지고 그 사람만 확대되어 보이는 이상한 현상도 존재한다. 그런 것 보면 세상은 마음의 눈으로 살아가는 것이 확실하다.
가족 외에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되는 첫 경험. 그 경험은 정말 행복하고 귀한 경험이었다. 의무가 아니라 기꺼이 챙기려 하는 마음, 내 마음에 앞서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고 기쁘게 하려는 적극적 선의. 모두 원초적인 사랑의 마음이었다.
대학 입학 후 1년을 정신없이 첫사랑에 빠져 보냈다. 그런데 당장 눈앞에 없으면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일 때, 나의 첫사랑은 나라의 부름을 받고 떠나야 했다. 지금이야 내부반에서 전화기 사용도 가능하고 휴가도 잦아졌지만 그때는 하염없이 전화를 기다려야 했다. 뒷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면 통화를 길게 하지도 못해서 늘 걸려오는 전화에 반가움과 아쉬움이 동시에 생기는 수신자부담 콜렉트콜이었다.
최전방 화천에서 근무하는 나의 첫사랑은 힘든 군생활이지만 그리운 마음을 편지로 대신하며 잘 견뎌냈다. 밖에서 생활하는 나는 그 사람에 비해서는 훨씬 낫겠지만, 그래도 옆구리가 비어 마음이 허전한 그 시간들을 온갖 만들기 기술로 버텼다. 편지와 소포 보내는 재미로 지냈고, 얼굴도 모르는 곰신들의 커뮤니티에서 소통하면서 지냈다. 사랑의 힘은 많은 것들을 견딜 수 있게 하고, 이겨낼 수 있게도 했다.
그렇게 서로 애틋한 사랑을 하며 보냈지만 우리에게도 이별은 찾아왔다. 남자친구가 제대를 하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사귄 지 4년째 되던 날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어쩌다 사랑하게 된 것처럼 어쩌다 헤어짐도 찾아왔다. 사랑하게 된 데에 한 가지 이유가 없듯이 사랑하지 않게 된 데에도 한 가지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우리도 변했고, 사랑도 변했다.
이미 20년 전의 추억일 뿐이지만 나에겐 소중했던 사랑의 기억이다. 그때 사랑해 봤던 경험으로 다른 사람을 만나서 더욱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었고 훗날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은 나의 이 첫 연애를 옆에서 다 목격했던 인물이라는 재미있는 인생 스토리가 있다.)
청춘이 아닌 중년의 나이에 사랑이 뭘까 생각해 보면, 사랑이란 서로를 향한 노력인 것 같다. 사랑의 감정이 생겼다고 해서 저절로 영원토록 지속되지 않는다. 그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 그리고 내 사랑을 책임지기 위해 영원히 노력하고 가꾸는 과정이다. 그 과정 속에서 상대방을 위한 마음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감과 애정도 높아진다. 그런 사랑의 힘으로 힘든 일도 이겨내고 헤쳐나가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사랑이 일어나기는 쉽다. 하지만 사랑을 지켜가는 것은 어렵다. 사랑을 지켜가는 것은 오롯이 두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는 절대로 지속될 수 없는 '사랑'. 사랑은 우리를 길러내고 성숙하게 해 주었다.
사랑이 늘 반짝이는 이유는, 두 사람이 노력한 땀방울이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래서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