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일을 겪었을 땐,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나의 감정을 외면하지 말고, 괜찮은 척하지 말고, 깊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해요.
- 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中
슬픈 일을 겪었을 땐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충분하다는 건 대체 얼마큼일까. 내가 괜찮아질 때까지 갖는 게 충분한 것이겠지. 그럼 내가 괜찮아졌다는 건 어떻게 가름할 수 있을까. 도통 모르겠다.
7년 전 아빠가 돌아가셨다. 아빠는 우리에게 절반 밖에 남지 않은 심장이었다.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누군가의 죽음은 마주하고 싶지도 않고 떠올리기도 싫은 것이었다. 친구들은 애 낳고 손주도 봐주시며 두 분 다 멀쩡이 살아계시는데 하늘은 굳이 절반밖에 남지 않은 우리의 심장을 도려내는 건지 모르겠다. 또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 죽음과 마주해야 했다.
감정을 외면한 적도 없고, 괜찮은 척하지도 않았다. 슬펐고 괜찮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죽음이 죽음 그 자체보다 더 무서운 이유는 죽음이라는 것을 처리해야 하는 절차들을 가져야 하고 그 후에 해야 할 것들도 많다는 사실이다. 도무지 죽음만을 바라보고 있을 시간이 없다. 가슴에 묵직한 돌이 혈류를 꽉 막고 있는 것 같은 슬픔이 느껴지지만 자꾸만 모른 채 해야만 한다.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이기에.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가장 죄스러운 게 부모 잃은 그 와중에도 배가 고프고 잠이 온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의 육체는 지극한 한계 속에 있다. 죽은 사람 앞에서 살겠다고 먹고 자는 꼴이라니.
대체 우리가 치른 이 거대한 행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감하지도 못한 채 정신없는 3일이 지난다.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온전히 슬픔을 겪을 시간은 여전히 없다. 도무지 아빠의 방을 쳐다볼 자신이 없어서 모든 물건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여명 1년이라는 말을 듣고도 샀던 새 침대. 죽을 사람 뭐 하러 옷 사주냐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철마다 사드렸던 옷가지들. 폐암 환자임에도 죽을 때까지 놓지 못한 그 애증의 담배와 라이터. 아빠와 한 몸 같은 생을 보냈던 TV까지.
봤을 때 아빠를 떠올릴 것 같다 싶은 모든 물건들을 싹 다 정리했다. 그때 나는 4살 1살 아이의 엄마였다. 정신이 없다. 늘 그랬듯이 또다시 육아가 곧 내 삶인 것 같은 24시간을 보냈다. 가끔 생각이 났지만 가슴에 통증만 느끼고 지나갔다. 대화 중에 아빠 이야기가 나오면 하기도 하지만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평소처럼 설거지를 하는 중이었다. 동파된 수도꼭지처럼 갑자기 내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하염없이 흘렀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내가 아빠 생각을 했었다는 걸 인지했다.
그 뒤로 뭘 할 때마다 아무 개연성도 없이 눈물이 흘렀다. 아빠를 떠올릴만한 무엇을 보지도 않았는데 왜 눈물이 그렇게 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양치하다 울컥하고, 길을 걷다가도 울컥했다. 애들이랑 장난감을 갖고 놀아주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펑펑 났다.
"엄마 왜 울어?"
첫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봤다.
첫째의 물음에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응, 갑자기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엄마!! 할아버지가 보고 싶으면 이렇~게 보면 되지. 할아버지는 여기에 영원히 살고 있어. 그러니까 이제 할아버지 보고 싶으면 여기를 봐."
뭐 그런 일로 우느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고개를 숙이고 가슴을 쳐다보며 아빠는 영원히 내 가슴속에 산다고 말이다.
그 말에 나는 더 펑펑 울었다. 지구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은 모든 것을 알고 태어난다더니 우린 모두 잊어서 지금의 내가 되었나 보다.
슬픔이 너무 강할 땐 슬픔을 마주할 수가 없다. 그 슬픔의 크기가 너무 커서 나를 잠식시킨다. 본능적으로 스스로가 아는 것이다. 지금 이 슬픔을 마주한다면 나는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고. 괜찮은 척 말고 깊게 들여다보라는 책 속의 말은 일리가 없다. 그 시기에는 깊게 들어갈 수도 없고 깊게 들어갔다가는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곳으로 빨려 들어갈지도 모른다.
6개월의 시간 동안 풍선에 든 바람을 빼듯 조금씩 조금씩 내 가슴에 찬 슬픔을 빼었던가보다. 시간이 흐르고 이제야 실감을 만들어내며 그때부터는 나를 지키기 위해 슬픔을 마주한다. 감당할만한 슬픔이기에 마주하는 것이다.
몇 개월이 지났는지 모를 만큼 아빠를 충분히 애도했다. 틈만 나면 아빠 이야기를 하고, 틈만 나면 앨범을 정리하며 아빠를 만났다. 정말 많이 울고 정말 많이 그리워했다. 괜찮은 게 어느 정도인지 얼마만큼 이 충분한지 몰라도 된다. 슬픔을 마주한 만큼 슬픔을 알아본 만큼 나는 나를 나도 모르게 치유해 간다. 슬픔이 슬프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면서 점점 나를 살릴 수 있는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여지의 공간이 생긴다.
슬픔을 물리치려 했으면 슬픔은 더 몸집을 키워내 내가 어떻게 해볼 요량을 부리지 못할 것이다.
'슬픔, 너 거기 있구나.' 하는 슬픔의 존재를 마주하는 시간만 가지면 충분하다. 행복이 내 마음이듯, 슬픔 또한 내 마음이기에 알아보는 만큼 나는 슬픔의 주인이 된다. 슬픔에게 공격당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게 된다. 공존할 수 있으면 슬픔을 작게 만들 수 있게 되는 때가 온다. 그때 나의 평범한 미래들을 다시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 엄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마주한 적은 없다.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엄마의 죽음이 나에게 슬픔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슬픔이 뭔지도 모르는 나이에 너무 거대한 슬픔을 맞이해서 그것은 내게 슬픔이 되지 못했다.
나에게 엄마의 죽음은,
14살의 어린 내가 만난 엄마의 죽음은,
아무리 바람을 빼도 빼도 영원히 줄어들지 않는 크기를 가진 풍선일지도 모른다.
그 슬픔은 끝도 없는 크기를 가졌기에 함부로 마주했다가는 풍선과 함께 나도 함께 펑! 하며 터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