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모집글을 보았다. 안희연작가의 『단어의 집』이라는 책이었다. 집 모양의 그림과 따뜻한 색깔의 표지가 마음에 들어 검색해 보았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단어들이 그 집안에 가득 차 있었다. "와, 이런 단어도 있구나.", "와 표현력은 왜 이렇게 좋대." 내용을 보며 감탄을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손은 신청이라는 글자를 클릭하지 않았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글처럼 느껴졌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들었던 말을 또 듣고 또 들으며 심신의 안정을 느끼는 걸 좋아하는 나. 생애처음 그리고 생의 끝까지도 만날 인연 없을 것 같은 낯선 단어들은 어릴 적 듣던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라는 제목을 떠오르게 했다.
며칠 뒤 그림 그리기 원데이 수업이 있어서 교육하는 센터에 들리게 되었다. 똥손이 만들어낸 작품임에도 선생님의 지도로 깨나 볼만한 작품이 나와서 뿌듯한 마음으로 귀가를 하려는 찰나였다.
"저희 독서모임 있는데 같이 하고 가세요."
내가 보았던 그 단어의 집 책으로 하는 독서모임이었다. 이런 우연이 있다니. 결국 나는 가질 수 없는 단어들과 조우해 버렸다. 시작 전 책을 좀 더 훑어보았다. 길항, 삽수, 휘도 참 신기한 단어들이 많았다. 그 낯선 단어들이 자신의 삶과 이어진다니 그건 더 신기했다.
독서모임이 시작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탕종이라는 단어가 있었죠. 작가의 탕종처럼 여러분들을 지키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탕종이라는 단어는 빵을 만드는 기법 중 하나라고 한다. 작가는 동네에 유명한 식빵 전문점에서 어렵게 탕종식빵을 구해온 날 그 단어와 인연이 되었다. 그 뒤로 계속 쓰다 보니 놀랍거나 두렵거나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슬픈 일이 닥칠 때마다 입 밖으로 되뇌는 주문이 된 단어였다. 결대로 부드럽게 찢어질 수 있는 유연함과 꾹 눌러도 천천히 원상태로 돌아온다는 그 탕종식빵을 보고 회복력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호스트의 질문에 나의 뇌리를 스치는 단어 하나가 있었다.
"개구리 죽지 않아."
때는 대학교 3학년. 1학년땐 학자금 대출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2학년 땐 장학금도 조금 받고 근로장학생 활동도 하면서 학비를 조금씩 충당했다. 그런데도 혼자서 큰돈을 마련하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3학년 2학기 시험기간이었다.
터널터널 계단을 올라갔다. 4층 강의실에서 시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걸음 한걸음 오르는 계단을 보며 하루하루가 하염없이 이어지는 똑같은 나의 일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야 하기에 가는 걸음. 마지막 4층 계단에 도착해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었다. 커다란 회색빛 복도철문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문에 누군가 낙서처럼 적어놓은 글이 있었다. "개구리 죽지 않아."
무슨 말인지, 말이 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별 희한한 말을 다 써놨다는 생각을 하며 지나쳤다. 그런데 그 뒤로 이상행동이 생겼다. 나도 모르게 그 말을 마음속으로 반복하고 있었다. "개구리 죽지 않아." "개구리 죽지 않아." 이상하게 말하면 말할수록 힘이 생겼다. 그래 죽지 않았다. 나는 죽지 않았다. 나는 살아있다.
3학년을 끝내고 결국 휴학을 결정했다. 1년만 지나면 동기들은 모두 취업을 할 텐데 나는 후배들과 함께 해야 했다. 1년 동안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모아서 다음 해 복학을 하고 무사히 학교를 졸업했다. (휴학한 덕분에 그 시기에 같이 실습하던 친구들과 인연이 되어 평생 함께 연락하며 지내는 멤버가 생겼다.)
3억 년간 대멸종 몇 번을 넘기며 살아남은 생존왕 '개구리'
죽지 않은 개구리 덕분에 나도 힘을 내어 살아갔다. 지금도 여전히 힘든 일이 생길 때면 나도 모르게 무의식 적으로 "개구리 죽지 않아."를 속으로 외운다.
안희연작가에게 '탕종'이 있다면, 나에게는 '죽지 않은 개구리'가 있다. 수많은 천적들이 존재함에도 뜀뛰기와 위장술로 멸종을 이겨낸 개구리처럼, 나도 적절한 나아감과 쉼으로 내 영혼의 멸종을 이겨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