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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Feb 26. 2024

순간이동 예행연습

비행기에 오르는 그 날을 떠올리며 잠들기

우리 가족은 낙동강 하구둑 근처에 자주 놀러 간다. 강변 공원 규모가 엄청 커서 아이들 뛰어놀기에 최적화되어있기 때문이다. 날이 좋다 싶으면 돗자리랑 치킨 한 마리 들고 가서 몇 시간 동안 논다. 연날리기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야구도 한다.


강변공원에서 한가로이 놀고 있으면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그건 바로 푸른 하늘을 비행기가 가로지르는 모습이다. 이곳은 김해공항이 근처라서 비행기가 수시로 날아다닌다. 자유롭게 날아가는 비행기를 볼 때마다 신랑에게 말을 걸었다. "여보, 저 사람들은 대체 다 어디 가는 걸까?"


나는 태어나서 비행기를 딱 세 번 타봤다. 대학교 친구들과 졸업기념 제주도 여행 때 한 번, 신혼여행으로 하와이 갈 때 한 번, 둘째 돌 기념으로 제주도 여행 때 한 번. 그 이후로 비행기와 인연이 없다. 나의 여권은 이미 사용불가다. 비행기 탑승에 대한 스토리만 들어도 그 사람의 성격과 삶에 대해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비행기 스토리를 보면 도전의식 없이 편안한 삶을 즐기는 유형 낙찰이다. 그렇다고 내 안에 비행기를 타고자 하는 삶에 대한 꿈이 없는 건 아니다. 


오래전 『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이라는 책을 읽고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축구에 미쳐 호날두를 보겠다고 새벽마다 TV 앞에 있는 남편 때문에 우리 꼭 스페인 가서 축구 보자는 이야기도 했었다. 무한도전 프로그램에서 가수 싸이가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공연을 하며 새해 카운트다운 하는 장면을 보고 너무 인상적이어서 꼭 죽기 전에 직접 가야겠다는 다짐도 했었다. 지난주에는 하와이 일 년 살이를 하자는 꿈까지 추가되었다.


맙소사. 이렇게 많은 꿈들을 어디 구석에 방치하고 살아가는 것인가. 현생에 치여 꿈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인가. 내가 현실에 맞지 않는 허황된 꿈들을 늘려가는 것인가. 둘 다 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인생 끝날 때까지는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순식간에 전혀 다른 세상으로 나를 데려다주는 마법 같은 비행기. 그동안 내가 살았던 그 대지가 존재하는 건지 의심스럽게 만드는 동시에 지금 내가 발 디딘 여기가 현실이 맞는지 꿈같은 느낌을 주는 순간이동. 오늘 밤은 잠자리에 누워 내게 올 그날을 떠올리며 잠들어 봐야겠다. 


순간이동 예행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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