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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Mar 27. 2024

커피와의 이별

나는 이제 너보다 나를 사랑할래

결국 커피를 끊었다. 매일 카페를 가야 했던, 매일 커피를 마셔야 움직일 수 있었던 그런 내가, 커피를 끊었다. 커피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커피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은 스스로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커피는 나에게 맞지 않는 식품이라는 것을 분명 몸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하지만 오랜 습관이 되어있는 커피를 끊기란 쉽지 않았다. 단순한 습관을 넘어 행복의 근원이자 하루의 힐링처이니 도통 이별이 어려웠다. 커피를 매일 마시면서도 매일 이걸 마셔야 하나라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커피만 마시면 그렇게 행복해하면서도 이것의 노예가 되어있는 내가 싫었다.


첫 코로나를 겪고 난 후부터 원래 취약했던 기관지 쪽에 더욱 문제가 잦아졌다. 비염은 달고 살았지만 기침은 거의 한 적이 없었는데 잦은 기침이 일상이 되었다. 후비루가 심해져서 매일 목 이물감 때문에 컥컥 거리는 기침을 해야 했다. 도서관이나 서점 같은 조용한 장소에 가면 그런 민폐가 없다. 정적을 깨트리는 나의 기침소리는 당사자마저도 불쾌하게 만들었다.


내 증상과 원인에 대해서 검색해 보다가 후비루가 역류성식도염과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장 끊어야 할 음식 목록에 당당히 '커피'가 올려져 있었다. 매일 커피를 마시고 밥 먹으면 힘들어서 드러눕는 저질체력 때문에 어릴 적부터 좋지 않았던 나의 위장이 힘들어하고 있겠다 싶었다.


매일 불편을 느끼면서 맛있지도 않은 커피를 기분 때문에 마신다는 게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찰나의 욕구를 참지 못해 평생 불편하게 살아가고 몸을 망칠 거냐?라는 나의 질문에 대답은 뻔했다. 지금이 적기였다. 몸은 계속 신호를 주는데 주인이 모른 채를 해대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끊은 지 겨우 일주일 밖에 안되었는데 훨씬 컥컥거리는 횟수가 줄었다. 매일 내 집처럼 들락거리던 카페 대신에 텀블러에 차를 챙겨서 도서관에 간다. 덕분에 돈도 아끼게 되었다. 시간만 되면 꼭 마셔야 했던 커피에 집착하지 않으니 훨씬 마음이 편하고 자유로웠다. 하지만 아직 여전히 커피의 향과 기분이 생생하고 그립다. 매일 커피 마시던 오전 10시나 오후 3시가 되면 이상증상이 생긴다. '커피 당김 증상' 괜히 길가에 카페를 쳐다보게 되고 책 읽다가도 커피 생각이 간절해진다. 식후엔 믹스커피가 최곤데 고기 먹고 괴로워 죽을 뻔했다. 부엌 구석에 있던 믹스커피봉지를 코에 대고 킁킁거리고 있으니 신랑이 헛웃음을 짓는다. 담배 냄새 맡고 있냐며 (이십 년 전 본인이 담배 끊을 때 했던 짓인 게 분명하다.) 


커피가 당길 때마다 허브차도 마시고, 율무차도 마시고, 코코아도 마시고, 매실차도 마시고 별 짓을 다하고 있다. 뭐라도 마시니까 낫긴 하는데 전혀 대리만족이 되지 않는다. 커피는 대용이 없는 것 같다. 유일무이한 맛. 커피맛. 그 어떤 것도 커피를 대신할 수 없는 것 같다. 이제는 잊어야지. 그 맛을 (신랑은 아직 담배맛이 기억난다던데 큰일이다.) 


커피를 몇 잔 들이켜도 괜찮을 몸이었다면 좋았겠으나 어쩌겠는가 내 몸이 그런 몸이 아님도 받아들여야지. 나는 나를 위해 건강하게 살기로 결심했고 십 년 뒤의 나에게 미안할 짓은 하지 않기로 했으니 커피 없는 삶을 잘 살아보려 한다. 




To. 커피에게.

커피야, 그동안 고마웠다. 네 덕분에 많은 순간 벗어날 수 있었고 많은 시간 평온할 수 있었다.

하지만 행복은 찰나인데 뒤끝은 좋지 않아 너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단다. 나는 되도록 긴 행복을 원하거든.

내가 좀 더 튼튼한 몸을 가졌다면 너와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이 정도 오래 함께 했던 것도 나는 충분한 것 같다. 더 이상 너의 향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내가 되기를 바라며 이만 줄인다. 고마웠다. 안녕. 커피야.. 커피야.. 내가 많이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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