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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Mar 21. 2024

봄이 되면 떠오르는 것이 있나요?

저는 벚꽃처럼 피어났던 첫사랑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이곳은 집 앞에 있는 대학교 중앙도서관 5층이다. 오늘은 특별히 집중할 곳이 필요해서 카페가 아닌 도서관을 찾았다. 내가 사는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있으니 신선이 된 기분이다. 지나가는 대학생들을 보며 '나도 저럴 때가 정말 있었나……'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대학교 캠퍼스, 그리고 봄. 


곧바로 낭만과 청춘이라는 두 단어가 떠오른다. 이 싱그러움은 아무리 좋은 화장품 쓰고 고급 영양제를 먹는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찰나의 아름다움이다. 


꽃다운 스무 살.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나도 안다고 소리칠 수 있는 설레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만 곁에 있으면 다른 건 부럽지 않았다. 방금까지 암흑이던 세상도 언제 그랬냐는 듯 색이 바뀌었다. 함께 있는 그 순간은 언제나 핑크빛이었다. 내 마음의 색이 그렇게 물들었었나 보다.


서툴렀지만 순수했다. 아는 게 없었지만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의 우리는 그랬다. 온전히 서로에게 몰입되어 나를 잊은 채 주는 사랑을 마음껏 했다. 매일 만났다. 서로의 그림자처럼 함께 다녔다. 공부도 나의 학교가 아니라 그의 학교에서 함께 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늘 함께 집에 갔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만 중요했다.


그렇게 순정만화 같은 연애를 하며 1년이 흘렀고 나의 첫사랑이었던 K는 입대를 했다. 힘겹게 고무신시절을 거치는 동안에도 우리는 계속 함께 했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4년이 지났다.


아름다운 벚꽃도 시간이 흐르자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금 떨어지나 싶더니 돌아보면 우수수 떨어져 얼마 남지 않았다. 나무에 핀 꽃잎보다 바닥에 떨어진 꽃잎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도 계속 벚꽃에 집착했다. 아름다운 꽃놀이는 이미 끝이 났고 더 이상 벚나무에 눈이 가지 않으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 자리에 머물면 아름다웠던 그 순간들이 날아가버릴 것 같아서.


아름다웠던 것들이 아름다웠었음을 인정하는 것, 하지만 아름답지 않으면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진짜 아름다움이었다. 과거에는 분명 아름다웠으나 지금은 아름답지 않은 우리 사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떠났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벚꽃은 이미 졌다는 사실을 인정했을 뿐이었다. 함께 자주 걷던 그 공원 앞에서 서로의 미래를 응원하며 악수를 했다. 식어버린 마음을 쿨함으로 비겁하게 감쌌다. 아름답지 않은 순간에 또 아름다운 척, 파랗게 변해버린 나무 앞에서 꽃이 보이는 척. 거짓말로 자신을 지키고 서로를 지켜주며 이별했다.


어쨌든 봄이 와서 기쁘고,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있으니 더 기쁘다.

봄이 되면, 아름다운 벚꽃을 보면, 캠퍼스에 가면, 

순수했던 그 시절의 나와 K가 떠오른다. 

순수해서 열심히 사랑했고 순수해서 실수가 많았던 우리들. 

몽글거리면서도 아린마음. 

첫사랑은 봄처럼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이 짧아서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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