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레몬물이 염증 수치를 낮춘다는 말에 매일 레몬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9월에 있는 피검사에서 이번에는 이상한 수치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레몬물은 마실만 했다. 피로회복 등 갖가지 효능이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착즙기에 레몬을 눌러 짜면서 손목이 쓸 수 없게 된 것. 뒤늦게 자동 착즙기를 샀지만 이미 손목의 상태는 심각해진 뒤였다.
커피를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한번 나간 손목은 아이 둘을 키우면서 더 상태가 안 좋아졌다. 아이들은 제법 자라 이제 더는 높이 안아줄 필요가 없어졌지만, 손목을 필요로 하는 일은 여전히 주위에 널려 있다. 청소도, 빨래를 널고 개는 것도, 카페 일도, 음식을 만드는 일도 모두 손이 하는 일이다. 최근에는 학교 방학이라 첫째 점심밥을 챙기는 것과 성수기에 늘어난 손님을 치루는 일이 추가되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찜질을 하고 전기마사지 기계를 사용해 손목 회복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노력을 아무리 기울여도 손목의 상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식구들을 위해 정성을 들여 밥상을 차리는 일이 너무 버겁다. 대충대충 한 끼 한 끼를 때우다보니 죄책감이 더해간다. 마당의 잔디도 삐죽삐죽 보기 싫게 자랐지만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손이 하는 일 중에 지금 당장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면 나중으로 미룬 탓이다.
아침부터 돼지가 사육되는 환경에 대한 기사를 읽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예전에도 책을 통해 접한 내용이었지만 막상 온몸에 똥을 묻히고 너무나 더운 환경에 갇힌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신음만 하며 지내는 돼지들을 사진으로 보자니 더 채식에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오늘 점심은 오랜만에 가지를 쪄서 무치고, 무를 썰어 생채를 담그는 등 채소 반찬에 더 신경을 써서 차려냈다.
마음은 뿌듯하지만 손목이 애처롭다. 식재료를 썰면서도 행여나 손목에 무리가 갈까 조심조심. 설거지를 하면서도 너무 손에 힘을 주지 않고 살살. 손목은 제대로 주먹이 쥐어지지 않을 만큼 나쁜 상황인데도 제 역할을 다한다. 그러고보니 나는 언제부턴가 손목을 나와 다른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여긴다. 손목이 아프면서 시작된 일이다. 약하고 안쓰럽지만 그럼에도 내 몸 중에 가장 많은 일을 해내 늘 감사하다.
세상이 바뀌어 많은 것이 자동화되고 기계의 힘을 빌린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의 손길이 직접 닿아야 하는 일은 많고 많다. 손은 다행히 두 개지만, 평생 바꾸지 못하고 계속 쓴다는 건 참 가혹한 일인 것 같다. 언제든 상태가 나쁠 때 갈아 끼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갈아끼운 팔을 쓸 동안 빼둔 팔은 잠시 쉬면서 충전을 한다면 그러다 또 때가 되어 바꿀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카페는 계속 운영해야 하고 죽는 날까지 밥도 내 손으로 차려 먹어야 한다. 여름이 참 길다. 여름이 지나 아이들도 학교에 가고 카페 손님도 줄어들면 내 손목도 조금 상태가 호전될까. 해야 할 일은 많은데 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 늘어간다. 집안도 마당도 모두 엉망이다. 그 와중에 글은 계속 쓴다. 이건 손목에 무리가 많이 가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보호대의 도움 없이 손목을 쓰고, 웬만한 놀림으로는 무리가 가지 않는 상태가 되고 싶다. 그런 날은 언제쯤 올까.